[베이징에서] 무너지는 중국의 주5일 근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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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쌍휴일(雙休日)’로 부르는 주5일 근무제를 처음 도입한 것은 1995년이다. 그해 5월 중국 노동부의 한 관리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의 배경을 “세계 1백40여개 국가가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만큼 중국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을 세계 수준과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서방 기자들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했다.

사실은 근로 여건 개선이 아니라 실업 해소에 무게를 둔 조치였기 때문이었다. 개개 근로자의 업무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일 자리를 더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특히 휴일이 많아지면 소비가 늘어 관광 분야에선 1백만 일 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란 판단도 깔려 있었다.

헌데 최근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이같은 주5일 근무제가 유명무실해지는 추세다. 베이징(北京)의 경우 취업 인구의 한주 평균 근무일이 5.9일로 나타난 것이다. 주5일 미만 근무를 하는 4%와 5일 근무를 하는 45%를 합하면 베이징 취업 인구의 49%만 주5일 이하 근무한다.

반면 일주 내내 일하는 취업 인구는 44%나 됐다. 업종별로는 일한만큼 돈을 가져가는 데 재미를 붙인 도소매와 서비스 업종의 근무 일수가 가장 많은 6.2일이었으며 농업과 임업,목축업 취업자의 근무일수는 6.1일 이었다. 중국 국가기관, 공산당 조직 관계자, 국유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의 일주 평균 근무일도 5.7일이나 됐다. 이는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휴일도 없이 뛰는 최근 중국 공무원들의 자세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해석됐다. 전문 기술직의 근무 일수가 그중 가장 짧은 5.3일이었다.

최근 만난 중국 언론사의 한 친구는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탓에 오히려 상반기 중국 경제가 과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여유있게 말했다. ‘자칫’ 10%에 육박할 뻔 했던 성장률이 사스때문에 다소 진정돼 상반기 성장이 8.2%에 그쳤다는 배부른(?)얘기였다. 이런 중국의 고공 성장 뒤엔 한주 내내 일에 매달리는 중국인들의 땀이 배어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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