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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럽게 가꾼다

조인스랜드

입력

[전원생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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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시 도척면 큰길에서 벗어나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오르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상은(74)·박양자(69) 씨 부부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부부의 집에서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다름 아닌 푸른 식물들.

담장 아래쪽 비탈진 밭을 가득 메운 나무와 야생화는 마치 숲 속의 한 장면 같고, 나지막한 나무 대문 양쪽으로 가지런히 심어놓은 식물들에선 집주인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대문 너머로 보이는, 높다란 시멘트 벽을 빼곡히 감싼 짙푸른 영춘화와 담쟁이덩굴에도 절로 눈길이 머문다.

대문 안, 계단을 오르면 카펫처럼 잘 다듬어진 잔디 마당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잔디를 빙 두른 밤나무·반송·조릿대 등이 한여름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다. 곳곳을 수놓은 아치·항아리·돌확·조형물들이 뜰을 더욱 아름답고 생기 있게 만들고 있다. 집 옆으로 낸 길목으로 장미 아치가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로 노란색·주황색·분홍색 나리꽃이 꽃길을 이룬다.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듯한 그 길을 지나면 자연의 운치가 물씬한 뒷동산.

다양한 꽃과 나무가 피고 지는 뒷동산은 부부가 보물같이 여기는 공간이다. 특히 20년 가까이 가꾼 수십 그루의 잣나무와 박씨가 좋아하는 아이리스 군락은 자랑거리다. 너덧 집이 이웃하고 있는 산자락에서 부부의 집이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이렇듯 풍성한 자연 때문이다.

“우리가 올 때만 해도 주위에 집 한 채 없었는데…. 우린 IMF 외환위기 때 집을 짓고 이듬해 들어왔어요.”

남편 이씨가 일을 접고, 아이들도 졸업 후 직장을 잡으면서 박씨는 일찍이 꿈꿨던 전원에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시작한 생활이다.

▲집 입구 비탈밭에 가꾼 꽃밭. 보라색 꽃망울이 곱고 탐스러운 수국이 고목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찍부터 준비한 전원생활

“30대엔 식물들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40대가 되자 식물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길 가다가도 꽃나무를 잘 가꾼 집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나도 언젠가 전원에서 저렇게 가꾸고 살아야지 생각했죠.”

박씨는‘미래’를 위해 당시만 해도 드물던 화초 강의를 찾아다니며 꽃과 나무에 대한 지식을 익혔다. 분재·분경 기술도 배우고, 야생화와 수목원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경험도 쌓았다.

때마침 한 지인이 마땅한 부지를 소개했는데, 서울과도 가깝고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양지바른 위치가 단박에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

1990년대 초반 복숭아밭이던 지금의 부지를 사고는 틈날 때마다 들러 나무를 심었다. 30~40㎝ 높이의 잣나무 묘목들을 사다 경계를 둘렀다.

그렇게 5년을 오가던 부부는 1998년 완전히 짐을 옮기고는 복숭아밭을 가꿨다.

▲1. 울창한 식물이 먼저 맞이하는 부부의 집. 손 가는 대로 돌보고 다듬은 식물들이 자연의 일부처럼 편안하다.

▲2. 집으로 오르는 계단 옆 시멘트 벽을 타고 내리는 영춘화와 담쟁이덩굴. 3담벼락을 가득 메운 짙푸른 담쟁이와 돌

확의 물칸나가 나른한 여름날의 오후를 시원하게 깨워주는 듯하다. 4.카펫처럼 잘 다듬어진 잔디 마당. 밤나무·느릅나

무·산딸나무·반송 등을 경계식물로삼으면서 앞쪽으로는 키 낮은 조릿대를 심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도록 했다.

5. 마당 한쪽에 배치한 파라솔과 의자는 주변을 감상하면서 쉬기에 제격이다.


그러나 초보 농군에게 농사는 녹록지가 않았다. 비료값은 커녕 주위에 나눠줄 것조차 변변치 않았던 것. 결국 농사를 접고 꽃밭과 산나물 밭, 채소밭을 가꾸면서도 과실수를 재배하기로 했다. 먹을거리를 자급자족 하면서 주위에도 인심을 쓸 작정이었다.


본격적으로 땅을 고르고, 발품을 팔아가며 식물을 사다 심어 가꾼지 십수 년. 마당과 뒷동산에서 자라는 식물은 줄잡아 200여 종이나 된다. 이 가운데 박씨가 가장 애정을 쏟는 나무는 한 달 가까이 꽃을 피우는 미국산딸나무와, 귀하다고 알려진 은청가문비나무.

이들 외에도 물푸레나무·느릅나무·벚나무·대추나무·밤나무·감나무·매실나무·살구나무·포도나무·블루베리·블랙베리·영산홍·작약·수국·해당화·데이지·도라지·꽃양귀비·접시꽃·은방울꽃·삼지구엽초·노루오줌·달맞이꽃·노란 코스모스·무스카리·튤립·달리아·모나르다(오른쪽 사진) 등이 봄부터 가을까지 주변을 푸르고 화사하게 물들이며 소중한 열매도 안겨준다.


식물하고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는 박씨. 어디에 무엇을 심을지, 어떻게 꾸밀지 생각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하루가 금방 간다는 그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면 아예 식물들 속에서 산다.

▲ 하루 대부분을 식물들과 보내는 이상은·박양자 씨 부부. 꽃밭을 손보고, 채소와 산나물을 재배해 이웃과 나눠 먹는 재미가 그만이란다. 왼쪽 면 집과 뒷동산을 잇는 길목에 활짝 핀 노란색과 주황색 나리꽃. 색색의 꽃과 장미아치가 설치된 길목은 꿈동산으로 이끄는 느낌을 준다.


남편 이씨도 아내와 함께 뜰과 뒷동산을 돌아보며, 힘쓰는 일을 돕곤 한다. 하루 종일 식물들과 씨름하면서 하얗던 얼굴엔 기미가 내려앉고 곱 던 손엔 흙 때가 가실 날이 없는 데다 몸도 예전 같지 않지만 박씨는 쉴 줄 모른다.


“계획적으로 꾸몄어야 하는데…. 그냥 뒤죽박죽이에요. 그때그때 사다 심고, 옮겨 꾸미고요. 가지치기도 대충 해요. 힘에 부쳐 일일이 손보지도 못하지만, 제 모양대로 자라나게 두는 편이에요.”

시간이 날 때마다 손 가는 대로 매만진 뜰은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이는 부부가 원하는 뜰의 모습이기도 하다.

글 김성숙 기자 사진 최지현(사진가)

<저작권자(c)농민신문사 전원생활.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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