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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 vs 9300만원…“흑인, 백인 수준 살려면 228년 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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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세기 초 갱단 두목 알카포네의 도시로 오명을 안았던 미국 시카고가 또 다시 ‘잔인한 도시’가 됐다. 이번엔 갱단이 아니라 경찰력 남용이다. 지난 15년간 시카고에선 민간인 702명이 경찰의 총격을 받았고, 이중 215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연방 사법당국에 기소된 사례는 1건도 없었다. 9일(현지시간) 지역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경찰에게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백인 소득 85% 늘 때 흑인 27% 증가
“부자들에게 유리한 세금 제도 때문”
경찰 총에 숨질 확률도 흑인이 6배
시카고 15년간 민간인 215명 사망
연방 검찰, 경관 기소는 1명도 없어

시카고 경찰의 민간인 총격은 악명 높다. 대표적인 것이 2013년3월의 피자 배달원 이소 카스텔라노스(당시 26세) 피격 사건이다. 카스텔라노스는 속도 위반으로 교통 단속에 걸린 뒤 경찰 총을 맞고 숨졌다. 경찰관들은 “검문하려고 다가가자 카스텔라노스가 먼저 총을 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에겐 총이 없었다. 유가족의 탄원 속에 연방수사국(FBI)이 개입한지 3년5개월이 지났지만 기소는커녕 사실 규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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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엔 10대 절도 용의자 라쿠안 맥도널드가 백인 경관에게 16발의 총을 맞고 숨졌다. 1년 뒤에야 공개된 당시 동영상은 전국적 원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 경관은 어떤 혐의로도 연방 검찰에 기소되지 않았다. 시카고 검찰이 1급 살인 혐의로 기소했을 뿐이다. "연방 사법당국은 우리에게 무의미한 존재”(인권변호사 존 러비)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시카고 사례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왜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흑인 비율이 백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으냐는 것이다. 카스텔라노스와 맥도널드 모두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흑인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경찰 총격으로 숨진 비무장 민간인 중 흑인은 41%, 백인은 34%다. 미국 인구 중 흑인은 13.3%, 백인은 61.6%인 것을 감안하면 흑인의 희생이 두드러진다. 인구수를 고려하면 비무장 흑인 희생자가 약 100만 명당 1명으로 약 600만 명당 1명인 백인 희생자에 비해 6배 많다. 2014년 8월9일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숨진 것을 계기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민권운동이 분출한지 2년. 경찰의 몸에 장착하는 보디캠 보급이 확대됐으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시카고에선 지난달 말에도 승용차 절도 용의자인 폴 오닐(18)이 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오닐에겐 무기가 없었다. 경찰은 달아나는 오닐을 뒤쫓아가며 사냥하듯 총을 쐈다.

미국의 흑백 차별은 경제 분야에서도 진행형이다. 비영리기관 진취성개발조합(CFED)과 정책연구원(IPS) 보고서에 따르면 흑백 빈부 격차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백인 가구의 평균 부는 1983년 이후 30년만에 85% 증가해 2013년에 65만6000달러(7억2000만원)가 됐다. 하지만 흑인 가구의 평균 자산은 27% 느는데 그쳐 8만5000달러(9300만원)에 머물렀다. 백인의 부가 흑인보다 3배의 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추세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흑인 가구가 백인 가구 수준으로 재산을 모으려면 228년이 걸린다고 보고서는 예상했다. 백인들의 경제력이 정체될 리 없는 만큼 흑백 빈부격차는 사실상 영구적일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진다는 얘기가 된다.

CFED와 IPS는 이 같은 현상의 이유로 부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세금 제도를 꼽았다. 현재의 세제는 가계 자산 형성, 퇴직 후에 대비한 저축, 신규 주택 구입, 창업 등에 세금 경감 혜택을 주도록 설계돼 있다.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한 상당수 흑인 가정은 세제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는 것이다. 인종간 빈부 격차는 앞으로 더 큰 우려를 야기한다. 유색 인종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 2043년경엔 미국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한다. 이렇게 되면 부와 가난의 대물림 속에 계층간 갈등은 더욱 커지고 성장 잠재력은 메말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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