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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위치와 행선지가 관심의 초점|최은희·신상옥씨 북한 탈출…취재 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신상옥·최은희 커플의 탈출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토요일인 15일 하오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이들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일본 교오도 (공동) 통신이 제1보를 타전하면서 편집국 전체에 비상이 걸렸지요. 그러나 이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기까지에는 5일이나 걸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두 사람의 탈출 사실을 확인하고 또 그들의 신변 안전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보도 제한 협조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간 신문사에서는 일요일인 16일자 조간에 대대적인 보도를 계획했다가 무산됐고 다른 신문들도 호외를 발행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만 48시간 이상을 허송해야 했습니다.
-보도 제한이 풀린 것은 미국무성의 첫 공식 발표가 나온 17일 정오 (한국 시간 18일 새벽 2시)직후였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신문사에서 밤새워 신문을 만들고 발송·배달해야하는 곤욕을 치렀지요.
-반면 일본 언론들은 교오도 통신의 특종 보도가 나간 15일 밤부터 신문과 TV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세계의 주요 통신들도 정작 가장 관심이 많은 우리보다 앞장서 뉴스를 내보냈지요.

<일선 일요일에 보도>
외신 뉴스가 몇초 동안에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일본 신문 또한 하루면 우리 나라나 북한까지 전달되고 있는 현실에서 3일씩이나 보도가 늦어진데 대해선 이유야 여하튼 국민들에게 면목이 없게 됐습니다.
-이번 신·최 커플 탈출은 사건 현장이 8년 전의 실종 때와 같이 국제 무대이고 주인공들이 연예인이며 국내에 연고자들이 있는데다 첫 목격자는 일본인, 그리고 탈출 경로도 미대사관을 이용한 점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정치·사회·외신·문화부와 워싱턴·파리·동경·홍콩의 특파원들이 총동원되었지요.
일본 교오도 통신 보도를 15일 밤에 받아 들고 이를 확인하느라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에 국제 전화를 1시간이 멀다하고 계속했습니다.
『교오도 통신의 보도가 부정확하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예스』를 미 대사관 측으로부터 받아낸 것은 16일 하오였습니다. 그 사이 특파원이 현지에 투입됐고 국내에서도 연고지와 관련자들을 찾아 취재전선을 폈지요.
-일요일인 16일과 17일 양일간 빈 주재 미국 대사관에 4차례나 다시 국제 전화를 걸어「존·윌리엄즈」 대변인으로부터 로이터 통신 특종보다 4시간 앞서 미 대사관 성명 내용을 입수했으나 보도제 한으로 이를 제때 보도하지 못해 특종을 놓쳤습니다.
-주한 미 대사관의 한 부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빈 주재 미국 대사관과 미국무성, 그리고 한국 정부 등 3각 직접 접촉으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논평을 기피해 간접취재가 어려웠습니다.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많이 남아 있는 것과는 달리 빈·워싱턴·서울의 취재원들이 너무나 「비협조적」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미 정부는 정치적 난민 망명 문제에 관해 공식적으로 확인·부인을 하지 않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정부 입장을 표명할까하는 점에 많은 검토가 있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미국무성이 교오도 통신 보도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신·최 부부의 신변에 대한 기본적인 확인도 있을 것으로 보고 우리 정부도 미국무성의 정오 브리핑을 침묵 해제의 싯점으로 삼은 모양입니다.

<해외 특파원 총동원>
-앞으로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의 향방은 신·최 커플의 현 위치와 최종 행선지인데 현 위치에 대해서는 ▲이미 미국에 도착 ▲인접국인 서독의 미 기지에서의 보호 중 ▲빈 주재 미대사관에서의 체류 등 여러 가지 설이 나돌고 있어요. 이들의 신병이 오스트리아를 이미 떠났다는 추측의 근거는 미 정부가 어떤 사안에 관해 공식 논평을 하게 될 때는 통상적으로 이미 모든 문제를 일단 매듭 지은 뒤라는 점에서 나온 거지요. 그러나 행선지는 미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밝히지 않는 것을 관례로 삼고 있어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종 행선지 문제는 이들 부부가 원 국적지인 한국으로 올 수 있는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요.
-이들 부부가 한국적을 아직 갖고 있으므로 당연히 원상 회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논평 중 「미국의 합리적 처리 기대」라는 대목은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뜻이 우회적으로 표현되었다는 분석도 있지요. 또 미국무성이 신·최 커플에 대해 「망명」 (Asylum) 대신 「도움」 (Assistance)이라는 용어를 쓴 점이 최종 행선지의 융통성을 시사하는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행선지 결정에 융통성>
즉 이들의 행동을 「망명」으로 규정해 난민 처리 절차를 밟는다면 미 정부는 그들 자신의 희망국으로 일단 보내야하는 의무를 지게되지만 「도움」을 주는데 그친다면 행선지 결정에 상당한 융통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요.
-미국이 오스트리아·한국 등 관련 당사국들과 비공식적으로 어떤 형태의 협의를 하리라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낙착될 것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8년2개월 동안 신·최씨 부부가 방황하는 사이 그 가족들도 많은 파란을 겪었겠지요.
[그렇습니다. 최씨의 남동생 경옥씨 (55·영화 감독)는 최씨가 납북된 후 영화 제작에서 손을 뗀 뒤 「애완견 센터」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또 신씨의 조카 명길씨 (44)도 신 필름 제작 상무와 안양 촬영 소장을 맡아 15년간 신씨의 영화 제작을 도왔으나 78년 이후 영화계를 떠나 스포츠용품 판매업을 하고 있어요.

<시골 생활하는 양녀>
-16일 하오 6시쯤 충북 괴산으로 내러가 신·최씨의 양녀 신명희씨 (26)를 만났지요. 고속도로로 청주까지 2시간, 다시 국도와 논두렁길을 따라 2시간 가량 들어가는 산골 마을에서 신씨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7천평 밭에 담배 농사를 짓고 있더군요.
-집 골목 어귀에서 신씨를 만난 기자가 『부모님에 대한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러 왔다』고 하자 신씨는 영문도 모른 채 『더 이상 부모님 일로 귀찮게 말아 달라』며 이웃집으로 가버렸어요.
잠시 후 부모가 탈출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기자에게 달려온 신씨는 『정말 이예요. 정말 믿어도 되는 거예요』라며 울음부터 터뜨렸습니다.
그만큼 신씨가 양부모인 신·최씨 납치 사건 이후 주위 사람들의 억측에 시달렸다는 얘기겠지요.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이런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신씨는 현재의 시골 생활에 만족한 듯했어요. 그녀는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딸인가 싶지 않을 정도로 순박한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신씨의 남편도 84년 말 고향으로 내려와 이젠 부부가 함께 담배 농사를 지으면서 소박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신씨의 탈출 소식에 누구보다 반가와 한 사람은 오수미씨였어요.
한때 인생의 동반자로 오씨가 인기 스타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고 두 자녀를 남기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던 신씨가 마음속에서 쉽게 지워질 수는 없었을 겁니다.
오씨는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세번째 받았다. 첫번째는 홍콩에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때였고 두번째는 납북 소식을 들었을 때였으며 지금이 세번째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단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최은희씨와 함께 살던 언니 경헌씨는 1주일 전인 10일 살고 있던 서울 동부이천동 공무원 아파트에서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아들이 사는 시골로 이사를 해 집을 찾느라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동부이천동 사무소에 기재된 전출지 주소란에 「적금 1리」의 「1」자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죠.

<친한 영화인들 추적>
그러나 경헌씨도 처음엔 동생의 탈출 소식을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경헌씨는 때마침 뉴스 시간이 되자 TV를 돌려가며 일요일 낮 뉴스를 다 훑어봐도 최은희씨 얘기가 한마디도 나오질 않자 『당신들 거짓말하는구먼. 늙은이를 속이려들면 못써』하며 역정을 내더군요.
-일요일 아침호외 발행에 대비하여 우선 전화 다이얼을 돌린 곳이 지난 2월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신·최 부부를 만났던 영화인 5명의 집이었어요.
공교롭게도 모두 외출 중이라 한사람도 집에 없어 난감하더군요. 신·최 부부를 가장 최근에 만나본 그들이 무엇인가 꼬투리를 들려줄 수 있을텐데….
그중 한사람 화천 영화사의 김재웅 전무가 가족과 명보극장으로 『아마데우스』를 보러나갔다는 얘기를 듣고 경찰 기자를 극장으로 보내 찾아냈지요.
그 직후 우진 영화사 정진우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에도 김지미씨가 그곳에 와 있다는 거예요. 달려가 인터뷰를 했지요. 이렇게 해서 영화계 인사들은 모두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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