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P의 「침묵」에 갖가지 「설」|귀국 3주…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종필 전 공화당 총재가 돌아와서 3주일이 지났다. 끊임없이 풍운을 몰고 다닌 과거 국내 정치에서의 그의 비중과 현 정치 정세가 미묘해지고 있는 터에 택해진 귀국 시기 등으로 인해 그에게 쏠리는 각계의 관심이 비상하다.
더군다나 장본인이 장차 거취는 고사하고 귀국 동기에 대해서도 수수께끼와 같은 침묵을 고수하고 있어 「극적」 분위기마저 자아내고 있다.
김씨의 귀국 후 최근 거동을 두고 한 측근은 『주변 관망·의견 청취 기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김씨가 자신의 거취에 대해 지키고 있는 침묵은 철저하다. 왜 왔는지, 다시 나가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없다. 미국을 지나다니는 길에 수차 김씨를 만났고 귀국 후에도 만나고 있는 이병희씨는 『당최 속을 드러내지 않아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친형인 김종익씨조차도 『얘기를 않으니 낸들 알겠소』라며 고개를 젓는다.

<측근에 속셈 안 비쳐>
행동 반경도 따라서 극히 제한적이다. 주로 청구동 자택에 「칩거」중이다. 지난달 25일 귀국 직후와 달리 요새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내방객을 맞고, 차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본심은 절대 꺼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일 민족 중흥 동지회를 방문, 구 여권 인사를 상면했을 때나 11일의 어느 오찬 자리에서도 모임의 성격을 벗어난 발언은 자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김씨의 조심스런 처신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은 측근들도 비교적 자신 있게 전망한다.
그리고 그가 점차 행동 범위를 넓혀 나가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 바깥 출입이래야 딸 등 친척 방문, 주변 사람들과의 골프, 구 여권 인사들과의 식사 등에 그쳤던 김씨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지방 나들이」에도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립 묘지의 고 길재호씨 묘소를 참배했고, 곧 정태성 전 공화당 의원의 묘소를 찾아 충북 청주를 방문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또 지방의 종친회 유지들도 찾아가 만나며 그 길에 지역 유지들과의 골프 모임 등도 갖게 될 것으로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침묵도 정치" 강조>
그러나 이 같은 「비정치적」 지방 행차에 대해서도 측근들은 난점을 걱정한다. 그가 지방에 내려갈 경우 구 공화당 인물 등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들게 뻔한데 손에 닿는 정치 조직이나 구체적 정치 목표도 없이 바람만 일으켜 잡음과 혼선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김씨 주변 인물 치고 그가 정치를 포기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결국은 정치에 나설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미 정치 활동은 시작됐다는 견해도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민족 중흥 동지회 한 간부는『침묵 자체도 의미 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11일 한 오찬 모임에서는 한때 김씨와 갈등 관계에 있던 이후락씨가 『어떤 사람들처럼 떠들어야만 정치를 하는게 아니라 침묵하는 것도 정치』라고 했는데, 김씨의 측근인 한병기씨는 그 말을 『김씨의 심경을 적절히 나타낸 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측근에서는 김씨의 정치 활동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열지 않으면서도 88년 대통령 선거와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폭의 세인의 관심과 의혹에는 적극적인 방어 자세를 취한다. 정부 쪽이 오히려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가 돌아온 후 민족 중흥 동지회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길전식·최영희씨 등 중흥회 간부를 비롯해 이병희·장영순·구자춘·이영근씨 등 정치적 비중이 컸던 과거 여당·정부 인사들과 김종익·한병기씨 등의 측근들이 김씨의 주변에 모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구체적인 정치적 구상을 놓고 실질적인 문제들을 도모하고 있지는 않은 형편이고 『솔직이 말해 아직은 시국관도 일치해 있지 않은 상태』라는게 주변의 토로다.
그러나 김씨가 어떤 결심을 세우고 구심점을 형성하는 경우 이들의 정치 세력화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회원 2천여명의 중흥회는 17일까지 회칙 개정안을 마무리, 4월 임시 총회를 열어 이를 확정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새 회칙은 2명의 부회장을 5명으로 늘리는 등 간부진 확대 외에도 구 공화당의 당무회의 격인 「상임 운영 위원회」 (40명 규모)를 신설, 그 밑에 총무 협의회·기념 사업 협의회·회원 친선 협의회·여성 협의회·홍보 협의회·연구 조사 협의회 등의 설치를 구상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중흥회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방 조직도 있느냐』고 묻고 『고인 유업을 기리는 사업의 목적을 분명히 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도록 하자』면서 큰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선 신경 쓰는 듯>
김씨의 귀국에 대한 각 정당의 관심 표명은 아직 소극적이다.
특히 민정당은 이렇다할 언급이 없다. 더구나 어떤 수준의 당직자 회의에서도 거론된 적이 없다는게 당직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몇몇 의원은 개인적 논평을 통해 『우리 당으로서는 그에 대해 중립적』『정부·여당의 장차 정치 구상과 무관하다』『김씨가 올바르게 처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귀국에 대해 야권에서는 관심이 깊다.
10·26 직후 그와 함께 3김 시대를 구가했던 김대중·김영삼씨는 애써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지만 상도·동교동의 측근들은 곳곳에서 들어온 정보·풍문 등을 종합하면서 △향후 JP의 활동 방향 △재 출국 여부 △현 정권과의 역학 관계 등을 세밀히 분석, 전망하는 모습들.
국민당의 이만섭 총재는 한때 『국민당에 입당한다면 총재로 모실 생각』이라고 했으나 요즘은 『유신에 관계됐던 사람인 만큼 해명 절차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다소 후퇴한 듯한 얘기를 하고 있다. <한남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