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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여성이 출세해야 남성도 잘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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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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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크리스토프
NYT 칼럼니스트

미국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남성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힐러리 대선 도전, 괄목할 일
여성 지위 상승, 남성도 혜택
보건·치안·교육 획기적 개선
‘유리천장’ 소멸, 필연적 추세

또 다른 유리천장이 무너졌으니 더욱 평등한 세상이 열렸다고 박수를 쳐야 할까? 아니면 여자가 이겼으니 남자는 진 거라고 한숨 쉬며 술잔이나 홀짝거려야 할까?

힐러리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 민주당 전당대회는 여성해방을 경축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미국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기도 전에 태어난 102세의 제럴딘 에밋 할머니가 애리조나주 대의원단을 대표해 클린턴 지지를 선언하며 눈물을 흘렸을 때는 전율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민주당 관계자들은 힐러리의 후보 지명이 남성 유권자의 이탈을 초래할 수도 있다면서 걱정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고졸 이하 백인 남성층에선 트럼프 지지율이 급증했다. 트럼프가 클린턴과 박빙 경쟁을 벌일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유권자층이 트럼프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걱정에 앞서 “여성이 잘돼야 남성도 잘된다”는 주장을 펼쳐보도록 하겠다.

미국인들 가운데는 여성 대통령 등장을 환영하지만 클린턴이 그 영예를 차지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는 이가 많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클린턴의 대선 후보 지명은 여성의 진보가 곧 인류의 진보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요 이정표다. 그랜트 밀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미국 여성들이 19세기 말~20세기 초 각 주에서 투표권을 얻을 때마다 공공보건 예산이 늘어나 매해 2만 명 넘는 아동이 목숨을 구한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표밭이 된 여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치인들이 앞다퉈 보건 확대 공약을 내놨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아기의 상당수는 남자였다. 이들 중 일부는 아직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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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아 온 유리천장이 부서진 결과 남성들이 혜택을 본 또 다른 분야가 치안이다. 아말리아 밀러 버지니아대 교수에 따르면 여성 경찰이 늘어난 지역에선 가정폭행을 참다 못해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대폭 줄었다. 그렇게 해서 목숨을 건진 사람 중엔 부인을 심하게 때리던 남성이 많았다. 여성 경찰의 증가가 부인 폭행을 일삼아 살해당할 공산이 커진 남성을 살리는 결과로 이어진 거다.

에스터 듀플로 MIT대 교수는 “차별은 사회 전체에 손실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IQ 높은 남성 또는 여성으로만 이뤄진 팀보다는 성별·인종별로 다양한 사람이 섞인 팀이 더 큰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듀플로 교수의 실험 결과 가장 이상적인 성과를 낸 팀은 여성 55%, 남성 45%로 이뤄진 팀이었다.

여성이 참여하면 더 나은 결정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남성의 과도한 자신감과 위험을 무릅쓰는 무모한 성향을 억제시키기 때문이다. 주식 거래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주식거래액이 45% 더 많다. 이로 인해 남성은 여성보다 연수익률이 2.7%포인트 뒤진다는 연구도 있다. 남성 주식 거래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수익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처럼 막무가내로 위험을 무릅쓰는 남성들이 우글대는 기업이 투자를 하면 끔찍한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리먼브러더스가 여성 중역을 많이 채용해 ‘리먼브러더스 & 시스터즈’가 됐더라면 비극적 운명을 피해 갔을 것이다.

여성의 비약적 진출로 혜택을 본 또 다른 분야는 대학이다. “프린스턴대에 여자가 들어오다니 말세로다.” 1968년 프린스턴대에 처음 여성이 입학하자 이 대학을 졸업한 한 남자가 한 말이다. “학교를 매춘굴로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란 악담까지 나왔다. 프린스턴대의 첫 여성 졸업자는 ‘동물’이란 조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여성 대졸자가 급증하고 여성 석·박사들도 흔해지면서 미국 대학은 빠르게 성장했다. 그 과실은 남녀 학생 모두에게 돌아갔다. 1975년 여성 졸업생이 공식 배출된 지 3년 만에 프린스턴대의 최우수와 차석 졸업상은 모두 여성이 차지했다. 이들은 여성의 뇌가 남성에게 결코 뒤지지 않음을 입증한 것이다.

미국 경제가 불황을 겪을 때 여성이 오너로 있거나 여성 임원이 더 많은 기업은 남성이 오너로 있는 기업보다 직원을 해고한 경우가 적었다. 이들 기업의 단기수익은 감소했지만 인재 유지 차원에선 가치 있는 결정이었다. 남성 우월주의자들은 “우리 회사는 여자가 오너야”라며 투덜댔을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실업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여성 오너 덕분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클린턴의 대선 후보 지명으로 “유리천장이 또 깨졌다”고 한숨 쉬는 남성이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여성의 지위 상승은 공정사회로 나아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여성의 힘이 커질수록 남성도 이익을 본다”고 말이다. 두 달 전 필자는 남다른 의지력의 소유자인 아프가니스탄 소녀 술타나에 관한 기사를 썼다. 탈레반의 본거지에서 살던 술타나는 남몰래 독학으로 영어·수학·과학을 마스터하고 미국 유학을 시도했지만 비자를 거절당했다는 슬픈 뉴스였다. 하지만 그 뒤 두 달 만에 그녀가 드디어 비자를 얻어 미국에 입국했다고 한다. 여러분도 기쁘지 않으신지.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NY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