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CEO 승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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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80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 후보였던 잭 웰치의 가장 큰 걱정은 나이였다. 세 명의 최종 후보 중 잭 웰치가 만 44세로 가장 어렸다. 경쟁 후보는 50세, 58세였다.

이 때문에 그는 이사회에 낼 최종적인 자기 소개서에 만일 CEO를 맡게 되면 그 자리에 10년 이상 머무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포함시킬까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만류로 그 내용을 삭제했다고 잭 웰치는 자서전에서 술회했다.

능력 위주 사회라는 미국에서도 나이가 문제될 때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이와 무관하게 잭 웰치는 준비된 후보였다. 전임 CEO 레그 존스가 후계자 선정에 나선 74년부터 6년간의 피말리는 경쟁을 통과했다.

GE를 20년 동안 이끌며 세계 초우량 기업으로 키워낸 잭 웰치가 후임자를 선정한 과정도 비슷했다. 그는 94년부터 후보 16명을 뽑아 숱한 테스트를 한 끝에 2000년 말 제프 이멜트를 후계자로 임명했다.

CEO 승계 모델은 통상 경마(競馬) 방식과 릴레이 방식으로 나뉜다. GE 스타일이 경마 방식이다. 반면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전 코카콜라 회장이 80년대 중반부터 더글러스 이베스터에게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시키다 97년 회장직을 물려준 게 릴레이 방식이다.

이베스터 회장이 2년여 만에 중도 퇴진하긴 했지만 인사 전문가들은 두 방식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며 높은 잠재 역량을 가진 많은 CEO 후보군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시티그룹의 샌퍼드 웨일 회장 겸 CEO가 내년 1월 찰스 프린스에게 CEO 자리를 넘겨준다고 최근 예고했다. 그러나 웨일은 2006년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웨일의 수렴청정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위한 안전판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CEO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후임 CEO를 뽑는 일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주주총회가 열리기 직전에야 은행장 등 CEO 후보가 정해지곤 하는 우리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