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잃었다”던 50대, 사고 직전 수차례 차로 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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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질주로 부산시 해운대에서 24명의 사상자를 낸 뇌전증(간질) 운전자는 ‘의식을 잃었다’는 주장과 달리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운전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해운대 광란 질주 뇌전증 운전자
경찰, 뺑소니 혐의 추가 체포영장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4일 “블랙박스 동영상과 현장 주변 폐쇄회로TV(CCTV) 영상 분석 결과 가해 차량 운전자 김모(53)씨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영상 분석을 바탕으로 김씨에 대해 뺑소니 혐의도 추가 적용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15분쯤 참변이 발생한 해운대구 문화회관 네거리의 600여m 앞 도로에서 자신의 푸조 차량으로 앞서 가던 엑센트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후 김씨는 곧바로 2차로에서 3차로로 차로를 바꿔 도주했다. 신호 대기로 멈춰선 차량 사이를 빠른 속도로 지나고 버스 앞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후 5시18분쯤 문화회관 네거리 1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과 부딪친 뒤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들을 잇따라 쳤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21명이 다쳤다.

경찰은 “1차 엑센트 추돌사고부터 2차 사고에 이르기까지 차량 진행상황 관련 영상 분석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김씨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만약 김씨가 발작 등의 증상으로 의식을 잃었다면 1차 사고 후 다른 차량을 들이받거나 인도로 돌진하는 등 사실상 통제 불능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의식을 잃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 외에 뺑소니 혐의도 추가했다.

경찰은 다만 김씨가 유동인구가 많은 한낮의 도심에서 뺑소니 운전을 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김씨 질병과의 연관관계도 조사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사고 분석을 의뢰하고 필요하면 의사협회에도 의견을 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부산대병원 이가현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도 여러 종류가 있다. 즉시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도 있고 어지럼증이나 구토를 먼저 유발한 뒤 몇 분 지난 다음 발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김성수 해운대경찰서장은 “김씨가 일부 의식이 남아 있었더라도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몽롱한 상태에서 차를 몰다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부산=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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