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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3분의 1 잠복결핵…‘1인 5만원’ 검사비 확보 못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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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화여대 목동병원에 이어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결핵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났다. 질병관리본부는 삼성서울병원 소아암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27·여)가 정기 건강검진에서 전염성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두 명 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소아 환자 간호사라는 점에서 감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대 이어 삼성서울 간호사 확진
어린이집 20명도 잠복결핵 감염
OECD 회원국 중 발생·사망률 1위
1989년 이후 투자 등한시 한 탓
정부 뒤늦게 “집단시설 의무 검진”

보건 당국은 삼성병원 환자 86명과 동료 의료진 43명의 감염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삼성병원은 보호자를 대상으로 결핵 검사와 잠복결핵 감염 검사를 할 예정이다. 3월에는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결핵에 감염돼 29명에게 균을 옮겼 다.

병원만 그런 게 아니다. 3일 경기도 광주의 한 어린이집 원생 20명이 잠복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5월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교사한테서 감염된 것이다. 학교·어린이집·의료기관 등 집단시설 감염이 급증하고 있다. 2013년 3265곳에서 3834명이 전염성 결핵에 감염됐다. 지난해에는 7250곳, 7973명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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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부터 줄곧 결핵 발생률·유병률·사망률 3개 지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발생률(인구 10만 명당 신규 환자 수)이 86명으로 2위 포르투갈(25명)의 3.4배에 달한다. 가장 낮은 미국(3.1명)의 약 28배다. 지난해 3만2181명이 새로 결핵에 걸렸고 2305명(2014년)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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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이유는 투자를 등한시해 왔기 때문이다. 89년 보건소가 담당하던 결핵 관리의 상당 부분이 건강보험으로 넘어갔고 민간 의료기관이 관리를 떠맡았다. 2011년에야 정부가 민간 의료기관에 전문 간호사를 배치하기 시작했고, 2013년에야 종합대책이 나왔다. 올해 예산도 392억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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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정책이 이어지는 동안 노숙자·외국인노동자 등 취약계층 감염 증가, 집단감염 추적 관리 부실, 약이 안 듣는 내성 환자 증가 등의 문제가 축적됐다. 한국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결핵이 급증했다. 당시 균에 노출된 사람들이 잠복결핵 상태를 유지해 왔다. 입시에 시달리는 10대, 취업난과 날씬한 몸매 압박에 시달리는 20대도 결핵의 새로운 환자군이 됐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전 국민의 3분의 1이 잠복결핵 환자여서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른다. 삼성병원 간호사도 지난해 검진에선 정상이었다.

잠복결핵은 전염성 결핵과 달리 당장 감염되지는 않는다. 일종의 보균자다. 하지만 이 중 5%는 감염 2년 이내에, 5%는 생애 중에 전염성 결핵으로 발병한다. 정부가 잠복결핵을 잡기 위해 4일 의료기관·어린이집·학교·유치원·산후조리원 등 집단시설 종사자(145만 명)의 결핵 검진을 의무화한다. 하지만 검사비(약 5만원)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고령화를 결핵의 ‘잠재적 폭탄’이라고 경고한다. 조영수 서울시립서북병원 결핵1과장은 “과거에 결핵에 감염된 사람들이 지금은 노인이 됐다. 65세 이상 노인의 결핵 유병률(특정 시기에 질환에 걸린 환자의 비율)이 일반인의 두 배, 80세 이상이 5배 높다”며 “이들은 대부분 요양병원·요양원 등 집단시설에 거주하고 있어 감염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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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장은 결핵을 예방하려면 “▶생후 1개월 이전에 결핵예방접종(BCG)을 하고 ▶술·담배를 끊고 ▶과도한 다이어트를 피하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며 ▶2주 동안 기침이 계속되면 즉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잠복결핵=균이 있지만 병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 증상이 없고 남한테 옮기지 않는다. 피부반응검사·혈액검사로 확인한다. 약물치료를 하면 90% 이상 발병을 막을 수 있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잠복결핵의 10%가 전염성 결핵으로 발병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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