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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헬기 소음 삼킨 마닐라의 함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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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면에서 계속>
마닐라로부터 홍콩·싱가포르·태국 등으로 거액의 현금과 귀금속을 지니고 탈출하는 필리핀 거부들이 줄을 잇고 있다.
24일 밤 홍콩의 카이탁 공항에는 마닐라항 노선이 모두 취소된 가운데 10세미만의 두 딸과 함께 막대한 현금과 보석을 소지한 한 여인이 자가용비행기로 도착, 공항당국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필리핀 공직자들의 해외탈출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에스텔리토·멘도사」필리핀 법무상이 해외로 도피하려다 마닐라 공항에서 공항 관리들에 의해 체포됐다.
법무차관과 지방주지사도 겸직하고 있는「멘도사」는 샌프란시스코로 도망치려다 붙잡힌 것.
그러나「카스트로」외상과 마닐라 부시장「마타이」는 25일 해외로 도망쳤다.
미국주재 필리핀 대사이며「이멜다」의 오빠인「로무알데스」는 이미 23일 밤 괌으로 탈출했으며「마르코스」대통령 당선을 선포했던「이니게」국회의장은 25일 홍콩에서 급거 귀국,『나는 조국의 정치위기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고 선언해 도망치기에 급급한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나는 목숨을 겁내지 않는다. 그들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나를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정부군들이 20년 장기집권의「마르코스」정권을 무너뜨리는데는 국영TV 방송장악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반정부군은 채널4 국영TV 방송을 신속히 장악함으로써 이 방송을 통해「코라손」여사와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크게 높이는데 성공했고 대국민 홍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혁명군은 방송을 통해 지지군중을 모으고 정부군의 동태를 소상히 전하는가 하면 총격에 부상한 시민들을 의한 헌혈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방송은 25일 상오부터는「마르코스」를 전대통령 또는「마르코스」씨로 「코라손」여사를 대통령으로 지칭하기 시작, 「마르코스」정권을 부인했다.
「마르코스」기 망명길에 오를 때까지「코라손」여사는 전파 매체전에서 단연「마르코스」를 압도했다.
채널4의 국영TV는 24일 철야방송에 임했음에도「마르코스」측의 채널3, 채널9 방송들은 자정이 넘자 방송을 중단, 다음날 아침 늦게야 방송을 재개했다. 특히 정작 실황을 중계해야 할「마르코스」의 취임식은 취임선서 직전 돌연 중단됐으며 이 마저도 재방영되지 않은 채 미국 영화를 보여주는 등 엉성하게 방송을 마쳤다.
「하이메·신」추기경은「마르코스」대통령의 하야 발표 후 성명을 통해「마르코스」의 몰락은 온 국민의 기쁨이라고 말하고「코라손」여사의 신정부 수립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신」추기경은 이 성명에서『본인은「코라손」대통령과「라우렐」수상에게 축하의 뜻을 표한다. 그러나 이번 승리의 진정한 소유자는 국민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더 큰 축하를 보내는 바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성명은 이어『비록 우리가「코라손」여사를 필리핀 행정부의 수반으로 뽑는 기쁨을 누리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20년간 필리핀을 통치해온「마르코스」대통령이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덧붙였다.
「마르코스」가 쓰던 방들은 모두 자물쇠로 잠가져 있었으며 국가기밀관계 사무실 문은 그의 개인변호사「프라드·델·카스틸로」씨가 지키고 있었다.
「카스틸로」씨는『이 방안에「코라손」신임 대통령의 남편인 고「아키노」상원의원의 암살과 관련된 문서들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대통령궁에 진입한 군중들은 값비싼 샹들리에를 끌어내리고「마르코스」가 사용하던 부엌으로 가 병과 남비들을 집어 던졌다.
군중들은 또 각종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아래층 방에서 서랍을 열고 약탈했으며 그 옆에 놓여 있던 신발·라디오·타월 등을 쓸어 버렸다. 또 다른 사람들은 화장실에 물을 넘치게 해놓고는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군중들이 대통령궁에 진입하자「마르코스」사람들과의 충돌을 우려한 신부 몇 명이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코리」사람들은「마르코스」사람들을 궁 구석에 모아 놓고 돌멩이질을 해댔다.
그들은 창고를 열고『이것은 우리 것이다』라고 외치면서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물건들을 가질 만큼 들고 나왔다.
하와이의 미국관리들은 만약「마르코스」가 미국으로 가던 도중 하와이에 일시 체류하면 이를 허가하겠다고 발표.
미국관리들은「마르코스」의 일시체류를 위해 보안등을 강화하고 있다.
「마르코스」가 하와이에 머무를 경우 그가 이미 국가원수는 아니지만 비밀 경호원들로부터 경호를 받도록「레이건」대통령이 지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피크스」백악관 대변인은「마르코스」대통령 가족은「베르」전 참모총장을 포함한 30여명의 일행과 함께 휴식을 취했으나『매우 피곤한 모습』이었다고 밝히고 미국은「마르코스」일행의 미국 망명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재확인.
그는 또「폴·랙설트」상원의원이「마르코스」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레이건」대통령이「마르코스」에게『안전하고 품위있는 일생을 보낼 수 있도록 보장하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밝혔다.
한편 궁의 또 다른 문으로 이어지는 메디올라 다리에서는 약3천명의 좌익계 군중이「코라손」세력에 합류, 철조망을 걷어내고 궁 안으로 진입하려고 했는데 이 문을 지키던 한 사령관은『자신의 군대가 이제는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면서 자제해 줄 것을 당부.

<각국반응>
미국을 비롯한 서방각국은 25일 지금까지의 친구이자 제휴자였던 「마르코스」필리핀대통령의 하야를 환영하고 대통령이 된「코라손·아키노」여사를 환영했다.「마르코스」대통령이 비교적 평화적으로「코라손」여사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길을 택하자 새 정부를 승인했다.
그러나 소련과 그 동맹국들로부터는 아직 아무런 논평도 없다.
▲미국=「레이건」대통령은「코라손」새 대통령에게 축하전화를 걸었고「슐츠」국무장관이 미국정부는「코라손」여사를 필리핀의 새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레이건」 대통령은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고 「슐츠」장관이 전했다.
▲유럽공동체(EC)=12개국 EC회원국들은「마르코스」가 망명한 후「코라손·아키노」여사를 필리핀의 새 대통령으로 승인했다. EC외무장관들은 헤이그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코라손」여사에게 따뜻한 환영의 뜻을 보내며 새 대통령은 국민의 소망을 성취시킬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처」영국수상은「코라손」여사에게 축하한다고 말했고「파비우스」프랑스 수상은 프랑스는「코라손」여사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유르겐·묄레만」서독 외무차관은「마르코스」의 망명이 필리핀 위기의 무혈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환영하고 안정된 새 정부가 구성되기를 희망했다.
▲캐나다=정부공식 대변인은 마닐라 주재 캐나다 대사가 곧「코라손」여사에게 신임장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일본은「마르코스」대통령의 사임 후「코라손」정부를 묵시적으로 승인했다.「아베·신따로」외상은 성명을 통해 일본은「마르코스」파와「코라손」파간의 대결이 평화적으로 해결된 것을 환영하며 필리핀 국민이 새 정부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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