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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期 암을 찾아라… '죽음의 싹' 발견만 하면 100% 完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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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4명 중 1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암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대안이 있을까. 예방은 정답이 아니다. '위암의 불에 탄 고기, 폐암의 흡연' 등 부위별로 원인이 모두 다르며 대기오염이 두렵다고 자동차를 타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최선의 방안은 조기발견이다. 치명적인 암도 1기에 발견하면 90% 이상 완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의 예외도 걱정돼서일까, 0기암 단계에서 찾아내려는 노력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0기암이란 암세포가 상피란 얇은 층에 국한된 암. 혹처럼 3차원적 덩어리라기보다 암세포 막이 서너개 겹쳐 형성된 2차원적 층이라고 볼 수 있다.

원자력병원 병리과 정진행 박사는 "0기암은 혈관이나 근육.림프선 등 조직 내부에선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는 극초기 단계의 암"이라며 "단지 암세포만 발견될 뿐 생명을 위협하는 전이 등 암 특유의 성질은 없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암 진단에 포함되지 않음은 물론 보험에서도 암으로 인정하지 않아 부분적 보상만 이뤄지고 있다.

상피가 잘 발달한 유방과 자궁경부에서 주로 발생한다. 0기암이 중요한 이유는 이 단계에서 치료하면 거의 1백% 완치가 가능하며 수술이나 항암제 등 거창한 치료를 받지 않고도 간편하게 암의 싹을 잘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자궁경부 0기암 진단을 받은 K씨(32)를 보자. 결혼을 앞둔 그녀는 최근 아무 증상이 없었지만 우연히 직장 신체검사에서 질세포진 검사를 받았다. 암세포가 의심된다는 소견과 함께 인근 산부인과에서 파필로마 바이러스 검사와 자궁경부 확대촬영 검사 등 정밀검사를 통해 0기암 진단을 받았다.

K씨는 LEEP라 불리는 환상투열 치료를 받았다. 둥그런 금속 루프를 질을 통해 자궁 입구까지 삽입한 뒤 전류를 흘려 암세포가 있는 상피를 태워 없애는 치료다. 시술은 부분 마취로 5분 만에 끝냈으며 치료 후 당일 퇴원했다. K씨는 정말 자신이 암 치료를 받은 것인지 의심했을 정도라고 했다.

그녀가 해야할 일은 혹시 남아있을 암세포에 대비해 3개월에 한 번씩 질세포진 검사를 받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자궁이 온전히 남아 있으므로 결혼 후 임신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촌 봄빛병원 산부인과 김성수 원장은 "자궁경부 0기암은 10년 후 절반 이상의 여성에게서 침윤성 암으로 악화한다"며 "질 출혈 등 증상이 없더라도 성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20~30대 젊은 여성이라도 반드시 질세포진 검사를 통해 0기암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질세포진 검사란 면봉이나 브러시로 질을 통해 자궁경부의 세포를 살짝 긁어내 유리 슬라이드에 묻힌 뒤 현미경으로 암세포 여부를 살펴보는 검사. 간편하지만 오진 가능성이 큰 것이 흠이다. 많은 경우 40%에서 암이 있는데도 정상으로 나올 수 있다. 운 나쁘게 긁어낸 부위 외에 암세포가 있는 경우다.

파필로마 바이러스 검사와 질확대경 검사는 질세포진 검사의 오진을 보완하기 위한 검사다. 검사비는 병원마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세가지 검사를 합쳐 3만~10만원이면 가능하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한국 여성에게 가장 흔한 암이었던 자궁경부암이 유방암과 위암에 이어 3위로 추락한 이유도 0기암 상태에서 일찍 발견해 치료함으로써 암 발생률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방암도 0기암 상태에서 진단이 가능하다. 암세포가 젖이 나오는 통로인 유관의 상피에 국한된 경우다.

서울대병원 외과 노동영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선 전체 유방암의 30%를 0기암 상태에서 발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5% 정도로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유방의 0기암도 몽우리나 분비물 등 증상이 없다. 맘모그램이라 불리는 유방 엑스선 검사와 유방 초음파 검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한가지 흠이라면 유방 0기암은 자궁경부 0기암과 달리 유방을 잘라내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 유방의 경우 혈관이 치밀하게 분포해 상피에 국한된 암세포가 의사의 눈에 띄지 않고 다른 곳으로 퍼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술 전후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유방 0기암의 큰 장점이다.

자궁경부암이든 유방암이든 결론은 단순하다. 암은 일찍 발견할수록 간편하고 확실하게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증상이 없을 때 병원을 찾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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