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꼭 ‘검찰총장’이어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기사 이미지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산업은행이 은행장을 아직도 총재로 부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한 달 뒤인 2008년 3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때 일갈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전국 곳곳에서 전봇대가 뽑히던 시절이었다. 권위주의의 상징이 돼 버린 김창록 당시 산업은행 총재는 2주 뒤에 사표를 냈다. 후임자는 산업은행법이 바뀌지 않아 총재 직함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눈치껏 명함에 ‘산업은행장’이라고 새겼다. 현재 KDB산업은행 수장의 직함은 ‘회장’이다.

‘총(總)’ 자가 들어가는 자리 이름은 대부분 사라졌다. 2000년대 초에 정당 총재들은 대표가 됐다. 2009년에는 자유총연맹이 총재를 회장으로 바꿨다. 네이버 사전에는 ‘總’의 뜻풀이로 17개가 나온다. 그중에 ‘거느리다’가 들어 있다. 민주적 뉘앙스는 아니다.

국세청·경찰청·관세청 등 힘깨나 쓰는 기관이라고 해도 우두머리는 ‘청장’이다. 유독 검찰에서만 ‘총장’이다. 일제강점기에 검찰국 수장을 ‘검사총장’이라 불렀는데(일본은 지금도 그렇다) 명칭이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물론 급이 다르다. 검찰총장은 장관급이고, 국세청장·경찰청장은 차관급이다. 영향력 면에서는 그 차이가 장차관 간격 이상일 수 있다.

검찰총장이 있는 곳은 검찰청이 아니고 대검찰청이다. 검찰청법 3조에 ‘대검찰청은 대법원에, 고등검찰청은 고등법원에, 지방검찰청은 지방법원과 가정법원에 대응하여 설치한다’고 돼 있다. 대법원의 상대 역할을 하니 ‘대’자를 넣도록 한다는 취지다. 검찰 최고(最高) 조직을 대법원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모양새인데, 다른 나라에선 이런 사례를 찾기 힘들다.

검찰청에서는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 많이 벌어진다. 그중 하나가 서울중앙지검장 직위다. 통상의 지검장인 검사장이 아니고 고검장(고등검사장)이다. 고등검찰청이 아닌데도 ‘고검장님’이 수장인 유일한 경우다. 따라서 그를 만나면 호칭에 유의해야 한다.

각 검찰청에는 흔히 ‘특수부’라 불리는 부서가 많게는 네 개까지 있다. 풀네임은 ‘특별수사부’다. 보통 수사가 아닌 특별한 수사를 좀 해봤어야 센 검사가 된다. 홍만표 변호사, 우병우 민정수석이 이 특별 부서 출신이다.

검찰이 목과 어깨에서 힘 빼고 국민 곁으로 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총장부터 그 ‘특별한’ 직함을 바꾸면 국민들이 약속에 대한 의심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공자는 이름이 올바름의 시작이라고(정명론) 했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