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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잊혀진 민단의 70년 헌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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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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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지난달 29일 오후 고려대 화정체육관은 개구쟁이들의 운동회로 왁자지껄했다. 이날 운동회는 4박5일간 고국을 찾은 재일동포 초등학생 450여 명과 이들의 국내 친구 500명을 위한 행사였다. 치열했던 ‘박 터트리기’ 경기가 끝나자 한 교사가 두 나라 말로 외쳤다. “여기로 모이세요, 고고데 아쓰메테 구다사이.” 동포 학생 중 200여 명은 일본 학교에만 다녀 한국어가 서툰 탓이다. 부모 한쪽이 일본인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행사를 주최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측은 부모를 설득, 한국어를 모르는 아이들도 적극 끌어들였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모두에게 어떻게든 우리 문화를 알리자는 뜻에서였다.

올해는 민단 창설 70주년. 그간 민단은 조국을 힘껏 도와 왔다. 이들만큼 한국의 발전을 바라는 이들도 없다. 조국이 얼마나 잘되느냐로 사회적 대접이 달라지는 까닭이다.

실제로 1950년 북한이 남침하자 642명이 의용군으로 자원해 135명이 전사했다. 60년대에는 감귤 묘목 310여만 그루를 보내 제주도를 귤 왕국으로 만들었다. 구로공단을 입안한 것도 재일동포였으며 입주 기업의 70% 이상이 이들 소유였다. 100% 재일동포의 자본으로 신한은행이 세워졌다는 건 잘 알려진 일이다.

특히 서울 올림픽 때는 약 100억 엔, 지금 돈으로 1770여억원을 쾌척했다. 도쿄 한국대사관을 포함, 10곳의 일본 내 공관 부지 중 9곳이 교민들이 기증한 땅이다. 그간의 재일동포 성금 전체를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8000억원이 넘는다.

6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 송금이 나라 발전의 기틀이 됐다는 건 교과서에 나와 있다. 반면 이 이상으로 헌신한 재일동포들의 사연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로서는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닐 게다.

게다가 일본 방문 때면 으레 민단에 들렀던 한국 정치인의 발길도 요즘 뜸해졌다. 그래선지 민단 관계자는 “헤이트스피치 방지법 제정, 제2 도쿄한국학교 설립 등 한국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사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도움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어느덧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족의식이 강한 1·2세대는 퇴장하고 한국말이 서툰 3·4세대가 주류가 됐다. 그래선지 귀화자가 급증해 2009년 91만 명이던 재일동포 숫자는 지난해 85만 명으로 줄었다. 자칫 든든한 후원자였던 민단 조직이 와해될 판이다. 정치권과 당국이 이제라도 재일동포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