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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태평양 함대 최대의 전진기지|아시아·인도양 석유 수송로 방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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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은 필리핀이 공산화 위험에 놓이자 「미국의 이익」을 주장하며 조기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마르코스」대통령이 당선자로 확정된 지금도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선거후 필리핀사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이 그렇게 지키기를 고집하는 필리핀내의 「미국의 이익」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필리핀내에 확보하고 있는 수비크만 해군기지와 클라크공군기지다. 이 두기지는 미국이 해외에 갖고 있는 최대규모로 미태평양함대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두 군사기지 철수를 담보로 필리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마르코스」 대통령이 미군기지 폐쇄를 주장하며 정치적인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이 두나라가 서로 양보하지 못할 「이익」을 이곳에 갖고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수비크·클라크기지만한 대안을 찾을곳이 없다. 또 다른 곳에 옮기더라도 5∼6년의 시간과 40억∼50억달러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 불가능한 실정이다. 2·7 필리핀선거를 앞두고「아미티지」미국방차관보가 『베트남·이란·니카라과를 되풀이 할 돈과 시간이 없다. 필리핀기지는 지켜져야 한다』고 한 발언은 이같은 실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필리핀도 이 두기지를 지켜야할 실익이 있다. 그것은 기지사용댓가로 받는 미국의 원조와 현지고용인들이 벌어들이는 달러가 쓰러져가는 필리핀경제에 적지않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5년간(84∼89년) 기지사용료로 9억달러를 받아내고 연간 고용인 임금·공사계약·보급품조달비등 3억달러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6백80달러(84년기준)에 1백70억달러의 외채를 지고 연간 1백억∼2백억달러의 경상수지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필리핀으로서는 적지않은 금액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중요시하는것은 수비크·클라크 두기지가 떠맡고 있는 역할이다.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96㎞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클라크기지는 미제13공군의 본부가 있으며 넓이는 13만에이커(4천9백만평). 이기지는 병참지원기지로 하루 3천5백t의 보급을 처리할수 있으며 인도양의 디에고가르시아에 있는 미군기지 시설을 지원하는 구실을 한다. 이곳에 있는 3천1백50m의 활주로는 어떠한 비행기의 작전도 가능케한다.
수비크만 해군기지는 태평양과 인도양에 함정 90척, 항공기 5백50대, 병력 9만명을 보유하는 미7함대의 보급및 수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있다.
이 두기지외에 산미구엘 해군통신소·클라우밸리 폭격연습장·월레스 해군비행기 착륙장등 3개시설이 필리핀에 있다.
수비크·클라크기지는 자유세계원유의 50%가 인도지나해의 말라카해협을 지난다는 점에서 그중요성이 강조되고있다. 일본의 경우 원유의 70%가 이곳 해상로를 통해 도입되고있다.
특히 이들은 최근들어 소련이 베트남의 캄란만과 다낭기지에서 계속 군비를 증강해 가고 있어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데도 필수적이다.
소련은 현재 베트남기지에 25∼30대의 전함을 배치, 남지나해에서 활동중이며 8대의 정찰기, 16대의 폭격기와 1개의 전투요격기 편대도 주둔시키고있다.
미국은 필리핀기지를 지난 47년부터 양국간의 군사기지협정하에 91년까지의 시한으로 사용해오고있다. 지금 유효한 협정은 지난 83년에 경신한것으로 84년부터 89년까지 5년간 9억달러를 사용댓가로 지불키로했다. 79∼84년사이에 이미 5억달러를 지불한바 있다.
수비크만 해군기지에는 미해군병력 6천9백명이 배치돼 있으며 함정수리및 보급품수송을 위해 2만8천4백명의 필리핀인을 고용하고 있다. 이곳의 선박수리능력은 매월 70척에 달하며 군수품 창고에는 1억6백40만t에 달하는 탄약이 저장돼 있다.
클라크공군기지에는 9천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으며 1만7천명의 필리핀인을 고용하고 있다.
또 미국은 수비크·클라크기지에 전략핵을 배치해 놓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기지는 이곳에서 5천4백40㎞ 떨어진 인도양의 디에고가르시아기지, 2천4백㎞ 떨어진 오끼나와 (충승) , 8천㎞ 떨어진 하와이, 1만7백20㎞ 떨어진 미본토의 샌디에이고및 4천8백㎞ 떨어진 태평양상의 퍼드기지를 연결하는 전략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필리핀 선거가 있기전 국내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미국은 이 두기지의 대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이판·티니안·괌·팔라우군도등이 후보지로 물색되고 있다. 사이판섬에는 현재 공군기지가 설치돼 있으나 클라크공군기지의 대규모 병력및 시설을 옮기기에는 부적합하다.
특히 활주로가 2차대전이후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어 활주로의 보수가 필요하다. 오끼나와기지는 확장을 해야하는데 이에는 일본의 승인이 필요하다.
팔라우군도는 팔라우의회의 사용승인을 거쳐야 한다. 티니안섬은 미국이 사용승인을 받아 공군시설은 배치할 수 있으나 해군기지로는 부적합하다.
무엇보다도 미군기지를 철수하고 싱가포르·팔라우·괌·사이판·오끼나와등지로 배치할 경우, 이것은 미국의 해상방위선을 필리핀 동쪽으로부터 2천4백㎞정도 후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만큼 작전가능 지역을 축소시켜 남지나해와 말라카해협을 소련한테 넘겨주는 결과가 된다.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도 커다란 위협이 된다.
특히 최근에는 태국으로 기지를 이동하는 문제가 거론되고있다. 미국은 지난75년 인도지나전쟁이 끝나면서 태국의 모든 기지를 철수시켰었다.
그러나 태국은 베트남·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공산군들이 국경을 용이하게 드나들고 있어 전략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이 「마르코스」 정부가 볼모로 잡고있는 필리핀내의 군사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것은「마르코스」대통령에 대한 하나의「압력」으로 풀이된다. 현재 극도의 혼란을 맞고있는 필리핀 정국에 대한 하나의 해결방안을 촉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지철수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실제 조기선거 실시가 발표되고 나서부터 미국은 필리핀의 기지를 의식해서 일관성 없는 행동을 선거기간중 보여왔다. 조기선거를 필리핀에 권고할 당시 만약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으면 원조중단은 물론 모든 관계를 단절하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나 선거결과가 「마르코스」대통령 우세쪽으로 기울자 강경방침에서 후퇴, 채 결과가 확정되기도 전인 10일 「레이건」 미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필리핀에는 강력한 2개의 정당이 존재함을 확인했다』며「마르코스」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의회와 언론이 『미군기지를 위해 필리핀 민주주의를 팔아먹었다』 고 맹렬히 행정부를 비난했다. 필리핀내에서도 이같은 미국의 처사에 실망한 시민들이 반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선거후 야당후보 「코라손」 여사의 호소에 따라 불복종운동을 시민들이 전개하면서 필리핀정국이 극도의 혼란으로 치닫자 미국은「마르코스」정부에 대해 다시 강경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술츠」미국무장관은 『미군기지보다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함으로써 미국의 대필리핀 정책이 군사기지로 인해 얼마나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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