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분양권 불법 전매 뿌리 뽑을 때 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분양권 불법 전매와 다운계약 실태가 일부 확인됐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해 보니 전국을 무대로 1년 반 동안 세 차례 이상 아파트를 사고판 사람이 3000여 명에 달했다. 국토부는 지난달 31일 이들 중 200여 명을 골라 다운계약을 한 정황이 의심된다며 관할 세무서에 통보했다. 분양권을 전매하면서 세금을 줄이기 위해 거래금액을 실제보다 낮게 썼다는 것이다. 분양권 전매는 기존 주택보다 양도세율(1년 이내 양도 시 양도 차익의 50%)이 높아 다운계약서를 쓰면 그만큼 세금을 더 많이 빼돌릴 수 있다.

 이번에 걸러낸 불법 분양권 전매와 다운계약은 빙산의 일각이다. 불법 전매 뒤에는 이른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이 있다. 떴다방은 당첨 확률이 높은 청약 통장을 2000만~4000만원에 빌려 당첨되면 분양권을 되팔아 웃돈을 챙긴다. 재당첨 제한이 없어 한 개의 통장으로 여러 번 청약할 수 있다. 당첨만 되면 많게는 억대의 프리미엄을 며칠 만에 거머쥘 수 있다. 그러니 떴다방은 물론 서민들까지 ‘밑져야 본전’이라며 대거 청약 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투기를 부추긴 꼴이다. 과거 분양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 과도하게 규제를 풀었던 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런 대증요법은 분양 경기가 살아나는 등 병세가 좋아지면 바로 중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정부의 실기(失機)가 의도적이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지난 2년간 최경환 경제팀이 부동산 경기를 띄워 경기를 부양하려고 과열 조짐을 알고도 못 본 체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났는데도 완화했던 금융 대출 규제를 다시 조이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뒤늦게 정부가 단속을 강화하고 나서면서 이번엔 ‘뒷북 행정’ 논란이 일고 있다. 설설 끓던 부동산 시장은 변곡점을 맞고 있다. 6월 말 현재 미분양 주택은 6만 가구로 전달보다 8.2%가 늘었다. 위례·미사 등 신도시 입주로 전세 물량이 늘어나면서 역전세난 조짐까지 빚고 있다. 업계에선 이럴 때 현장 규제는 부동산 시장을 급속 냉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물 온도가 맞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지 못해 뜨거운 물과 찬물 틀기를 반복하는 ‘샤워실의 바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부동산 과열 억제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공급 과잉은 이미 정도를 넘어섰다. 2017~2018년 전국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70만 가구에 달한다. 1990년대 이후 최대다. 그런데도 공급은 줄어들 줄 모른다. 올해 상반기 주택 인허가 가구만 35만 채를 넘었다. 91년(36만1000가구) 이후 25년 만에 가장 많다. 상황이 심각하다. 한 번 당첨되면 일정 기간 재당첨이 안 되도록 청약제도를 손질하고, 선진국들처럼 아파트를 다 지은 뒤 분양하는 후분양제 등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때려잡자 식으로 몰아붙이는 건 삼가야 한다. 투기는 잡되 급속한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섬세한 정책 운용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