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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쌀값" 막기 위한 고육지책|정부미 가격 왜 대폭 내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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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도 스스로 밝혔듯이 이번에 정부미가격을 내린 것은 값을 떨어뜨려 정부미 소비를 촉진시킴으로써 쌀값 상승에 제동을 걸자는 목적이다. 일반미가 천장을 모르고 오르니 정부미 값을 내려서라도 쌀값 오름세를 막아보자는 고육지책이다.
당초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2∼3%선으로 억제한다는 계획아래 쌀값에 대해서도 지난해 같은 시점과 비교해 5%안에 묶겠다는 가이드라인을 갖고있었다. 작년추곡수매가인상폭이 5%였으니까 쌀값 진폭도 이 테두리 안에서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쌀값은 이상현상이라 할만큼 연중 가장 싸야할 지난해 수확기부터 오르기 시작해 현재는 작년동기대비 17%나 올랐다. 80㎏ 한 가마(중품·기획원 조사)에 7만9천4백10원으로 1년 전보다 1만원의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미와 정부미를 합친 쌀값지수(80년=100)도 1월말 현재 1백45.7로 지난해(1백36.8)보다 8% 올랐다.
정부로서는 단경기도 아닌 연초부터 쌀값 억제선이 무너져 버린 셈이다.
모자란다면 몰라도 5년 연속풍년에 쌀이 남아도는 상황을 생각하면 최근의 쌀값 상승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다. 현재 전국의 쌀은 정부재고 1천5백60만섬, 농가에 쌓여있는 민간재고 1천7백 만섬, 싸전·도정공장 등의 유통재고를 합쳐 3천7백만섬이나 된다. 그런데 지금부터 햅쌀이 나오는 올10월까지 전국민이 먹을 쌀은 줄잡아 2천7백만섬이면 충분하다. 먹을 것 다 먹고도 다음해로 1천만섬이 넘어갈 판에 쌀값이 오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쌀값상승은 소비자들의 기호가 일반미를, 그것도 더욱 질이 좋은 특미선호로 굳어져간다는데 큰 원인이 있다. 지난해 쌀 생산량 3천9백만섬을 품종별로 나누면 일반미는 2천7백만섬, 통일계 신품종은 1천2백만섬이 된다. 모든 국민이 일반미만 찾는다하면 쌀은 모자라고 값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지난해는 가을수확기에 잦은 비로 질 좋은 쌀 생산량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물에 잠겨 변색이 되거나 싹이 튼 쌀은 일반미 2천7백만섬 중 5백30만섬으로 84년에 비해 4백90만섬이나 많았다. 일반 벼 재배확대로 늘어난 일반미 생산량42만섬을 감안해도 같은 일반미라도 질 좋은 쌀은 4백50만섬 가량이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질 좋은 쌀이 적다하니까 양곡 상들이 농촌을 돌아다니며 좋은 쌀 수집에 열을 올렸고 작년가을부터 쌀값이 강세를 나타낸 것도 이 때문이다.
농수산부는 쌀값이 작년11월 이후 이상 강세를 보이자 쌀값안정대책으로 지난 1월부터 농협백미 공매제를 실시한데 이어 3월부터는 도정 공장에 정부 쌀을 주어 가공판매 토록하는 조곡매출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10분 도로 묶여있던 규제를 풀어 미질 개선조처를 취했다.
이 같은 당국의 방침은 물론 정부미의 과잉재고를 축소시켜 양특적자를 줄이자는 뜻도 있지만, 질 좋은 정부미공급을 늘려 모자란 일반미를 보충함으로써 일반미 값 상승을 억제하자는 점에 더 큰 계산을 한 것이다. 그러나 농협백미 공매 제가 실시된 뒤 한동안 주춤하던 쌀값은 구정이후 다시 뛰기 시작해 정부는 당황하고있다.
쌀의 가격등락은 크게 나눠 생산자인 농민과 유통단계의 양곡상, 그리고 소비자들의 입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요즈음 농민들은 가을에 쌀을 수확해도 단경기까지 가급적 쌀을 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수확 때와 5∼6월 단경기에 연중 쌀값 진폭이15∼20%나 되는데 일찍 홍수 출하해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양곡상들도 지난 80년 이후 설립이 사실상 자유화된 이후 너도나도 난립, 경쟁이 치열해졌다. 경쟁으로 취급물량은 줄어들고 비싼 임대료에 이익은 남기자니 유통마진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요약하면 최근의 쌀값 상승도 이런 요인에 소비자들의 일반미 선호까지 가세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빚어낸 것이다.
양곡상들은 이번 정부미가격인하가 쌀값상승에 일단 어느 정도 제동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있다. 농수산부도 신품종도 같은 쌀인데 일반미와 격차를 벌려놓으면 일반미 값이 내리지는 않더라도 크게 오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정부양곡정책의 고민은 쌀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현재 뾰족한 대응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시장논리를 따르자면 일반미 값 상승은 일반미로 대응해야하는데 정부재고는 모두 신품종이니 정부의 가격조절기능이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조처로 쌀값상승이 둔화되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입장에서는 양특적자가 누적되는데 일반미 값을 잡겠다고 정부미 값을 무한정 내릴 수도 없을 것이다.
정부는 소비자들의 일반미 선호경향에 맞춰 오는 91년까지 현재 72%인 일반미 재배면적을 90%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올해에는 신품종 수매량을 사전에 예시해 수매량을 축소함으로써 일반미 재배확대를 유도하는 수매 예시제 실시를 검토하고있다.
그러나 이들 방안은 어디까지나 차후의 대책이고 지금은 이러한 생산구조 변화에 앞서 소비구조가 일반미, 그것도 더 질이 좋은 특미 선호로 앞질러 나타나 쌀값이 오르고있다.
농수산부가 이번 정부미가격인하조처를 발표하면서 『소비자들이 값싼 정부미 소비를 늘려 쌀값 억제에 협조(?)를 해줄 것』을 호소한 점도 바로 이러한 양곡정책의 고전을 반영하고 있다. <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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