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전사자 가족 조롱했다가 뭇매 맞는 트럼프

중앙일보

입력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찬조 연설자로 나선 이라크전 전사자 부모를 조롱해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무슬림계 미국인 변호사인 키즈르 칸 부부는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날 무대에 올라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칸은 2004년 이라크에서 복무하다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후마윤 칸의 아버지다. 그는 아들에 대해 얘기하며 ‘무슬림 입국 금지’를 주장한 트럼프를 비판했다. 또 헌법 소책자를 꺼내들고 트럼프를 향해 “헌법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인종·종교·성별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는 '법 앞의 평등한 보호' 조항을 찾아보라”고 말해 호응을 얻었다.

트럼프는 연설 이튿날부터 칸 부부를 비꼬기 시작했다. 29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칸의 아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고 말하는가 하면, 30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칸의 아내는 그가 연설할 때 옆에 서 있기만 했다. 아마 어떤 발언도 허락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내가 남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이슬람 교리를 비꼰 것이다. 또 칸의 연설을 ”힐러리의 연설문 담당자가 대신 써줬을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막말’로 자주 구설에 오른 트럼프지만 이번 발언은 도가 지나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의 발언 직후 칸은 “아내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커 전당대회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라며 “트럼프는 전사자 가족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아내인 가잘라 역시 MSNBC 인터뷰에서 “아들의 사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슬픔에 빠졌다”고 발언을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클린턴의 러닝메이트인 팀 케인 민주당 상원의원 역시 지난달 30일 트럼프에 대해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남을 조롱하는 것”이라며 “그의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클린턴 후보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미국을 위해 희생한 군인의 어머니에게 그런 표현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 전략가인 존 위버는 트위터에 “전사자 어머니에 대한 비방은 도리에 어긋난 것”이라며 “이를 만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올렸다. 또 매트 맥코위악 공화당 전략가 역시 트위터에 “트럼프를 대신해 칸 가족의 애국적 희생에 대해 깊이 감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는 30일 오후 “칸 부부가 아들을 잃은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면서도 “칸이 수백만 명 앞에서 내가 헌법을 읽은 적이 없다는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말할 권리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립헌법센터가 발간한 헌법 소책자는 칸이 전당대회에서 꺼내 든 이후 온라인 서점 아마존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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