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 1300곳, 김영란법 시행할 담당자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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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월 28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에 들어갈 경우 위법 신고 접수와 조사·처벌을 담당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위반 신고 들어와도 처리 힘들어
총괄할 권익위도 전담자 5명뿐
경찰 “법 적용, 감이 오지 않는다”

27일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정부 유관기관 등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정부기관은 1400여 곳이다. 하지만 이날까지 위반 행위에 대한 신고를 처리할 조직을 신설하거나 신고 담당자를 지정한 기관은 100곳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는 지난해부터 전국의 정부기관을 순회하면서 김영란법에 대해 설명회를 열고, 각 기관에 ‘청탁방지담당관’(과장 또는 국장급)을 지정해 6월 말까지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일선 기관의 준비 상황은 이처럼 미흡한 상태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각 기관은 신고 접수 후 조사를 거쳐 과태료까지 직접 결정해 통보해야 한다. 한 정부 당국자는 “기존 감사 부서의 인력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신고를 받으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처벌 수위를 결정해야 하는데 기존 인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집행과 감독을 총괄할 권익위도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권익위는 김영란법 위반 신고를 전담할 ‘청탁금지제도과’를 신설할 예정이다. 행정자치부와 협의를 거쳐 이 과에 배정된 인원은 5명에 불과하다.

권익위 관계자는 “법 시행 초기에 신고가 쇄도할 가능성이 큰데 일손 부족이 염려된다”면서도 “당장 업무 인력을 크게 늘리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권익위 차원에서 인원 보강을 지속적으로 행자부에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대로 가면 법 시행 초기에 큰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형사 처벌 여부를 조사해야 하는 경찰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은 해당 기관으로부터 수사 요청이 들어올 경우에 대비해 별도 팀을 꾸린다는 계획만 세워 놓은 상태다. 경찰청 관계자는 “부정 청탁을 어떻게 정의하고 적용해야 할지 내부에서조차 감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전남 기초단체장 결의문 채택=전남 시장·군수협의회(회장 박병종 고흥군수)는 26일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협의회는 “부정부패 근절을 바라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농·축·수산물 수입 개방으로 국산 소비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된다면 국산 농·축·수산물 소비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회는 결의문을 정부와 국회·전남도에 전달했다. 앞서 전남도의회도 지난달 21일 본회의에서 같은 취지의 건의안을 통과시켰다. 의회는 건의안에서 “시행령이 이대로 시행되면 농·축·수산물의 명절 수요가 사실상 사라지고 내수가 침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성훈 기자, 고흥=김호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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