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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유령기업 대주주인 청와대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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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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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요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논란에서 유독 눈길이 간 대목이 있다. 그의 가족기업이라는 (주)정강이다. 부동산 투자·임대 등을 하는 부동산업체다. 형태는 법인인데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페이퍼 컴퍼니, 즉 서류상 존재할 뿐 물리적 실체는 없는 유령기업이다. 급여 지출은 0원인데 접대비와 차량유지비 등으로 2000여만원을 쓰고, 자본금은 4억원인데 우 수석 부인 이모씨에게서 빌린 단기차입금만 75억원이란다. 이씨가 법인에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는 형태로 개인 재산 증식에 법인을 활용했다는 의혹은 그래서 제기된다.

이런 종류의 법인 운영방식이 독창적인 건 아니다. 대단히 흔하다. 요즘 속칭 금수저들 중엔 하는 일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부동산업체 대표·임원 혹은 주주 직함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자들 관점에선 ‘절세’, 관중의 관점에선 ‘합법적 탈세’ 창구로 이런 업체들이 활용된다. 부동산을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법인 명의로 돌려놔 개인 재산내역에선 빠지고, 세금도 줄일 수 있는 등 법인은 이점이 많다. 법인 투자에는 여러 가지 세금 혜택이 따르고, 법인 명의로 지출하면 비용으로 털 수 있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부자들은 자동차도 법인 명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개인은 법인 뒤에 숨어서 다양한 목적의 수익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런 ‘관행’을 문제 삼으니 우 수석 입장에선 ‘남들 다 하는데’라는 억울함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이 장면이 찝찝한 건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사람도 아니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수석, 게다가 검사 출신이 검사 시절부터 이런 업체의 대주주였다는 사실이다. 그도 검사였으니 알 거다. 기업인 혹은 각종 화이트칼라 범죄의 이면엔 이런 유령회사들이 있어 돈세탁과 조세포탈 및 횡령 창구가 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깝게는 홍만표 변호사. 백억대 수임료에다 전관예우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인 그 역시 부인을 통해 부동산 개발 및 투자 관련 업체와 연결돼 있다. 백여 채의 오피스텔 임대를 하고 출판사와 화장품업체 등 계열사까지 거느리고 있단다. 검찰은 이 업체를 통해 수임료 세탁 등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롯데가의 여인들인 서미경·신유미 모녀를 추적하는 것도 1000억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한 부동산업체를 둘러싼 의혹이다. 검찰은 이 업체를 비자금 은닉처 혹은 통로로 보고 있다.

이런 유령기업 활용 범죄는 하도 많아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다. 오래전부터 이런 유형의 기업을 사전에 단속하고 견제하는 방법은 없는지 알아본 것도 하도 반복돼서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론적으론 구체적 범죄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기업을 사전에 걸러낼 방법이 없단다. 도박 등 범죄를 목적으로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도 미리 걸러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란다. 그러니 ‘법 기술자’들이 법망을 피해 세금 안 내면서 돈 굴리는 유령기업을 만들어 호의호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선 페이퍼 컴퍼니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최근 페이퍼 컴퍼니 실소유주를 정확히 파악해 자금세탁 및 은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자금세탁방지규정 강화방안을 마련했다. 지난 4월 불거진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 이후 역외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탈세를 막기 위해 G20, OECD 회원국 주도의 글로벌 정보교류 체계 구축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렇게 남의 나라들은 법인을 악용하는 부자들의 범죄를 사전에 막는 장치 마련에 나섰다.

과거엔 기업의 역할을 이윤의 극대화, 고객 만족, 주주가치 확대에서 찾았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기업은 이익, 환경의 지속성,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 측면에서 균형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다. 기업시민의 개념도 부각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고용도 없고 사회적 책임감도 없이 부자들의 합법적 탈세를 위해 설립된 수상한 유령기업 규제방안을 마련하는 건 어떨까. 그게 시대정신에도 맞는 일이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