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대우건설 사장은 누가 뽑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사 이미지

이정재
논설위원

대우건설이 시끄럽다. 사장 선출이 파행을 겪으면서다. 다 결정됐다더니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된 게 벌써 두 번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우건설 박영식 사장의 임기는 이달 14일이다. 산업은행은 5월부터 후임 인선을 진행, 내부 인사인 박 사장과 이훈복 전무로 압축했다. 그런데 6월 10일 최종 면접까지 치른 후 갑자기 백지화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가 ‘외부에서 후보를 찾아보라’고 했다”는 게 산은이 밝힌 이유다.

재공모를 통해 새로 2명의 후보(박창민 현대산업개발 고문, 조응수 전 대우건설 부사장)를 뽑았다. 지난 20일 둘 중 한 사람을 고르기로 했지만 또 무산됐다. 안팎에서 온갖 고약한 소문이 나돌았다. “정부가 외부 인사인 박창민 고문을 낙하산으로 밀고 있다.” “아니다. 조응수 전 부사장을 앉히기 위한 역공작이다.” 뭔가 정부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날 5명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 중 산업은행 임원 2명은 박 고문을 밀었지만, 대우건설 사외이사 3인은 조 전 부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 바람에 선임이 무산됐다. 진화에 나선 이동걸 산은 회장은 “사추위원 간 숙려기간이 필요하다”며 사장 선임을 기약 없이 미뤄 놓았다. 졸지에 대표이사 자리가 비게 되자 산은은 임기가 끝난 박영식 사장을 다시 불러 ‘연장 근무’를 시키는 중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왜 생겼을까. 우선 엉터리 공모제가 문제다. 말이 공모지 대우건설처럼 국책은행이 대주주인 기업의 인사는 금융위가 알아서 한다. 그렇다고 금융위 혼자 하는 건 아니다. 대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최종 조율한다. 그러니 산은·금융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도무지 알 수 없거나 헷갈리고 의문투성이의 인사파동이 벌어졌다면? 배경엔 청와대가 있다고 보면 된다. 청와대 개입을 차마 말 못하고 얼버무리려다 보니 스텝이 꼬이는 것이다. 이제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대우건설 후임 사장을 고르던 5월은 한창 대우조선 부실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낙하산 인사가 집중 성토 대상이었다. ‘이런 민감한 시기, 대우(건설)·산업은행이 또 거론돼서 좋을 게 없다. 조용한 게 최선이다. 박영식 사장을 연임시키자. 제법 일도 잘해 주택 건설 1위를 3년 내내 지켰고 적자 기업을 흑자로 바꿔 놓았다. 무엇보다 이 정부에서 대통령의 검증도 통과한 사람 아니던가. 문제없을 것이다’라고 청와대 수석은 판단할 수 있다. 하기야 이런 사소한(?) 인사까지 일일이 대통령 뜻을 물어가며 번거롭게 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대통령은 정작 생각이 달랐다면? “대우조선이 엉망이 되고 분식회계를 일삼은 게 내부 인사가 계속 사장 하다 그렇게 된 거 아니냐?”고 가볍게, 정말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고 치자. 자신의 인사가 거부당한 수석비서관은 곧바로 공황상태가 된다. “아차, 대통령 뜻을 잘못 읽었구나. 처음부터 다시.” 이러지 않았을까. 현 사장을 유임시키는 쪽으로 다 얘기가 됐던 인사가 꼭 외부 인사가 사장이 돼야 한다로 갑자기 바뀌고, 금융위와 산업은행이 “무조건 외부 인사”를 밀어붙이는 이유를 달리 찾을 수 있을까.

그런데 꼬이려니 일이 심하게 꼬였다. 외부 인사를 다 모아봤는데, 적임자가 없다. 그 와중에 청와대 담당 수석도 바뀌었다. 대통령도 누구 딱 염두에 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언론에선 또 대우, 또 산은, 또 낙하산이라며 난리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설 수도 없다. 골치 아프니 일단 또 미루자. 그렇게 대우건설 인사는 산으로 간 게 아닐까. 그러니 애초 청와대 수석은 그때 딱 부러지게 말했어야 했다. “지금은 유임이 좋겠습니다.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현 대우건설 사장, 일도 잘했습니다”라고. 그렇게 소신껏 대통령을 납득시켜야 했다. 그러지 않고 청와대 수석이 그저 대통령 입만 쫓다 보면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인사로 가득 찰 것이다. 그건 나라뿐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재앙이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