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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에르도안,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 대대적 색출

중앙일보

입력

25일(현지시간) 터키에서 언론인 42명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AP통신은 “이들이 실패한 쿠데타 음모를 꾸민 혐의를 받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들 중 5명은 이미 체포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체포 대상에는 터키 유명 언론인 나즐리 일리칵, 에르칸 아카르, 에르칸 아쿠스 등이 포함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치 행태를 비판하거나 에르도안이 정적인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75)에 동조하는 글을 쓴 기자들이다.

터키 쿠데타 실패(15일)와 국가비상상태 선포(20일) 이후 터키 당국이 언론인을 대대적으로 체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에르도안식 배후 색출 작업의 일환이다. 터키 당국이 언론인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하면서 언론 활동이 아닌 범죄 행위 혐의를 내세운 것도 같은 이유다. AP통신은 “에르도안이 숙청한 군인ㆍ판사ㆍ검사 등의 숫자가 1만3000명을 넘는다”고 전했다.

이미 몸을 피한 기자들도 있다. 터키 유명 탐사 기자인 파티 야그무르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통화에서 “생명에 위협을 느껴 지난 22일 터키를 떠났다. 터키는 안전하지 않으며 국가비상사태가 종료될 때까지 터키로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터키 정보당국 소유의 트럭들이 시리아로 무기를 실어 나른 사실을 특종 보도해 ‘유럽연합(EU) 탐사보도상’을 받는 등 정부 비판 기사를 써왔다.

내란 음모를 빌미로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사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멧 아바카이 터키 진보언론인협회 대표는 “정부 비판 기사를 쓰는 기자를 단속하는 마녀 사냥이 될까 두렵다. 기자들의 자기 검열로 흐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경없는기자회 터키 대표인의 에롤 왼데로그루는 “터키 당국이 쿠데타 음모 혐의에 대해 조사할 권한이 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언론의 자유 또한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터키는 이미 언론의 자유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쿠데타 실패 이후 터키 정부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20개 웹사이트를 차단시켰다. 이 중 6개는 뉴스 사이트, 2개는 텔레비전 채널의 웹사이트였다. 지난 주엔 터키 경찰이 정부를 풍자하는 만화를 실은 터키 주간지 레만 매거진의 판매를 중단하고 가게마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수거해 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키 정부는 개헌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25일 “주요 정당들이 새 헌법을 만들기 위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개헌을 위해선 터키 의회 전체 의석 550석의 3분의 2를 넘는 367석을 확보해야 한다. 에르도안이 이끄는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의석수가 317석으로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공화인민당이나 민족주의행동당 등 주요 야당의 도움을 받아 개헌이 가능하다.

비날리 총리는 “개헌에는 야당뿐 아니라 비정부기구와 언론도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의원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바꿔 에르도안에 권력을 집중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에르도안이 “사형제 부활이 국민의 뜻”이라고 수 차례 언급한 만큼 사형제 부활도 개헌 내용에 포함될 수 있다.

귈렌은 25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독재 체제를 만들기 위해 조직적이고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는 에르도안이 나를 비난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터키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모든 것을 비판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이 나를 추방하도록 하는 게 에르도안의 목표이지만 미국은 거기에 저항해야 한다”라며 터키로 돌아갈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동에서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독재자를 수용해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정종문 기자 pers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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