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려 깊고 권위있는 소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9호 30면

사회적 소통의 핵심 역할을 해온 신문의 퇴조가 완연하다. 정보의 생산, 유통, 소비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초래한 경천동지의 변화 속에서 신문사망론은 오래 전부터 표출되어 왔다.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젊은 세대는 아예 외면하고 있는 듯 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신문 구독률은 2004년 48.3%를 기록한 이래 2012년 20.4%, 2015년에는 14.3%로 추락하였다. 열독률도 2004년 76.0%에서 2015년 25.4%로 급강하했다. 2015년 종이신문 이용시간은 7.9분으로 텔레비전(153.8분)과 인터넷(103.8분)에는 물론이고 소셜미디어(22.7분), 라디오(10.8분)에도 못 미친다. 2015년 종합일간지의 신뢰도는 3.83점, 지상파 TV의 신뢰도는 4.15점이다. 사지도 읽지도 믿지도 않는 매체로 신문이 전락 중인 것이다.


2013년 8월 5일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함께 미국의 3대 신문으로 꼽히는 워싱턴포스트가 아마존의 소유주인 제프 베저스에게 2억5000만 달러에 팔리던 날 기자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눈물은 미국 대통령 닉슨을 사임케 한 워터게이트 보도 때 이 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낸 벤 브래들리가 얘기했듯이 인류 세계를 풍요롭고 민주적인 공동체로 만드는 데 기여해온 ‘신성한 전문직’으로서 신문저널리즘에 대한 긍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생각하고 비판하고 탐사하고 논쟁하는 권위의 소통’으로서 신문은 어찌 되는 걸까.


신문은 로마시대 관보(官報)적 성격으로 출발했다. 중세 말의 서한신문, 르네상스의 필사신문, 부정기적 인쇄신문, 정기적 주간신문, 오늘날의 일간신문으로 발전했다. 정론지적 특성, 무색주의, 무정파주의, 중립성, 대중성, 객관성, 염가주의를 도입하며 대중신문의 시대를 열어 왔다. 대중신문은 엘리트 위주, 정치목적 위주의 소수집단을 위한 신문에서 다수 집단의 신문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이로써 주당 5~6 달러 소득의 노동자들이 신문 구입에 6센트를 치르는 부담에서 벗어나 1센트로 신문을 보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론지, 선정성, 상업성, 권언밀착, 역기능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통한 소통은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더 편한 정보이용과 비주얼 콘텐트를 선호하는 미디어 빅뱅의 시대에 시간을 들이고 고정된 공간에서 이용해야 하는 신문 정보에 대한 매력은 감소했다. 신문의 위기는 일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신문의 위기는 개별 신문사의 경영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공공성을 지닌다. 신문 정보는 인간사회의 구성 요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한 진중한 숙의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부정부패에 대한 감시, 인권신장, 제도 개선, 책임 정치, 건전한 공동체 형성에 필요한 용기있는 소통도 감당해 왔다.


‘보는 것을 믿는(Seeing is believing)’ 시대, 악성 정보가 범람하는 정보 홍수의 시대에 ‘사려 깊고 권위있는 소통’의 광장을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신문을 통해 인류가 힘겹게 성취해 온 진보를 이어가야 한다. 2008년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문의 위기를 다루는 세계 최초의 국민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다원주의적 신문이 존재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 책임을 위한 투명한 공적 기준과 방법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김정기한양대?신문방송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