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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정보요원, 샘플보관소 침입해 소변 바꿔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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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상 최악의 도핑 스캔들에 휘말린 러시아는 어떻게 도핑을 실시한 걸까. 정답은 조직적이고 교묘한 ‘바꿔치기’다.

조직적 도핑 어떻게 했나
깨끗한 소변샘플 미리 만들어놓고
술에 약물 탄 칵테일 ‘귀부인’ 먹여
“소치 때 도핑 양성 샘플 580개 폐기”

캐나다의 법학자이자 세계반도핑기구(WADA) 법률 대리인 리처드 매클래런이 이끄는 WADA 독립위원회는 지난 18일 ‘러시아의 조직적 도핑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정부가 주도해 금지약물이 포함된 술을 선수들에게 먹였다. 금지약물 세 가지와 술을 섞은 이 칵테일은 ‘귀부인(duchess)’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도핑 테스트는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피해 갔다.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직원들은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의 경기가 열린 날 밤 배관공으로 위장해 샘플 보관소 옆에 있는 방에 침입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연구원들로부터 샘플을 받아 몇 달 전 미리 채취한 해당 선수의 깨끗한 샘플과 바꿔치기를 했다. 샘플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바꾸기도 했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당시 이런 조작이 극에 달했다.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20년 만에 종합 1위를 차지했다. WADA는 이런 식으로 폐기된 도핑 양성반응 샘플만 580개에 달한다고 봤다.

구체적 진술도 있다. 소치 올림픽 당시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 책임자였던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는 지난 5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러시아 선수 수십 명에게 약물을 제공했으며 이 중에는 최소 15명의 금메달리스트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WADA 보고서는 러시아 육상에만 포커스를 맞췄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스포츠 전체에 도핑이 만연해 있다. 내가 폐기한 선수들의 소변 샘플이 수천 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로드첸코프가 비밀을 폭로한 건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다. WADA는 러시아 정부를 타깃으로 삼았고, 러시아는 “로드첸코프가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비난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도 쏟아지고 있다. IOC가 러시아를 비호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제육상경기연맹 은 지난달 17일 러시아 육상대표팀의 국제대회 출전 금지를 주장했지만 IOC는 출전을 허가했다. USA투데이는 “IOC 결정에 가장 기뻐할 사람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친구’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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