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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랑하지만 속박당하긴 싫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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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제 경우도 그렇지만 주변을 봐도 전에 비해 남편들이 훨씬 더 가정적이고 아내를 위해 주는 것 같아요. 외식도 시켜주려하고 아내의 옷차림에도 관심을 가져주는 등 신경을 많이 써주는 것 같습니다』 결혼생활 6년째인 가정주부 한영희씨(31. 서울동대문구이문동)는 얘기한다. 『부부란 어차피 긴 인생의 공반자가 아닐까요. 결혼생활 10년이 되니까 이젠 서로에게 많이 익숙하고 길들여져 식성과 취미까지 닮아져버렸어요. 점점 친구가 돼가는 것 같습니다.』회사원 남재영씨(36. 서울강남구서초동)는 말한다.
30∼40대의 젊은 부부들은 이제 남편과 아내 사이를 「친구」,「동반자」,「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라고 이야기한다. 적어도 의식상으로는 부부를 종속적 관계로 규정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남편에게 너무 의존하는 아내,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남편은 『부담스럽다.』고 얘기한다.
『사랑해도 구속당하기는 싫다』는 것이 이들 젊은 부부들의 지배적인 의견. 남편과 아내 모두 마찬가지다. 그 자신들의 부부 사이가 그들의 부모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달라졌다고 한다.
구속당하기 싫다는 생각은 부부 단위로 볼 때 자녀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아이들이 자라면 그때는 더 좋은 기회가 많아 질텐데요, 조용히 온천에 가서 쉬고 싶은데, 아이들이 함께 가면 그들 치다꺼리에 미리 어른들이 지쳐버리니까 부부끼리 떠납니다. 』 3년째 부부만이 연초 휴가를 갖는다는 은행원 김재익씨(43. 서울종로구혜화동)의 얘기.
그렇게 부부 중심의 생활의식은 특히 자녀수의 감소로 나타난다. 도시에 사는 나이 젊고,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경제력을 가진 계층일수록 더욱 수의 자녀를 원하는 경향이라는 것이 대한가족계획협회 박동은 홍보부장의 말이다.
실제로 85년 국내에서 불임시술을 받은 30대 남자중 86%가 두자녀 이하인 경우. 20∼30대 부부중 상당수가 2명, 최근에는 1명의 자녀로 단산하겠다는 경우도 늘고 있다.
남편은 동갑의 대학강사, 자신은 학술연구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김미경씨(29. 은평구신사동)는 딸 하나를 낳고 부부합의로 남편이 단산수술을 했다. 『우리 부부는 각자 공부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경제적·시간적 손실이라고 판단했습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자녀수가 크게 줄고 세탁기. 냉장고. 가스 테이블등 가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전기용품이 폭넓게 보급되면서 주부들의 여가시간이 크게 늘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주부들의 각성, 사회분위기도 그들로 하여금 자아 실현등으로 집밖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이상 더 주부들은 자의반타의반으로 집안에서 안주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한국사회가 산업사회의 한 특징이라할 개인의 능력과 업적이 당사자의 지위를 결정하는 「획득적 신분의 사회」로 바뀐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 조혜정교수(연세대. 사회학)의 진단이다.
따라서 의식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사회적빈문. 경제력이 전적으로 남편에게 종속된 주부들은 대부분 좌절을 느끼게 되고 일을 갖고 사회에 참여한국기를 열망케 되었다.
동국대 조은교수(사회학)가 85년 서울시내 18개 아파트의 5백명 주부를 대상으로 「중산층 여성들의 문제」를 조사한 바로는 이들 가정주부의 대부분이 「가정과 일」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 중 83. 6%가 『취업을 희망하고 있다』고 답했고, 64%가 『살림만 하고 산다면 억울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남편들도 대부분 가사외에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아내』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아내』에게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또 아내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하는 남편들도 늘고 있다.
5년간의 교직생활을 결혼과 함께 끝낸 주부 한영숙씨(38. 서울강남구 은마아파트)는 『아직도 내가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꿈을 자주 꿔요. 남편도 이제는 무언가 내게 일을 찾아주려고 애쓰지만 여의치 않아요. 주변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 안타깝습니다.』고 한다.
자아실현을 강조하는 사회분위기, 한 인간으로서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하는 듯한 남편과 자녀들의 묵시적인 압력등은 자부들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와 가정 분위기는 일부 주부들로 하여금 희생적으로 집안 일에 몰두하면서 『나는 이렇게 헌신적인 아내요, 어머니다』는 식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강조하고 심리적 보상을 요구하여 오히려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동 패턴을 낳기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제는 어차피 주부들도 자신들이 하고자 해지기 위해서는 가사 외에 몰두할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가족 모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실현될 때 부부 사이는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지고,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될것입니다.』고 이혜성교수(이화여대. 교육심리학)는 얘기한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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