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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내전 때 콜레라 환자 하루 200명씩 살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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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일하(69) 굿네이버스 이사장의 ‘봉사 인생’은 1970년대 중반 경기도 성남의 빈민가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목사 안수를 받아 막 교회를 개척할 참이었다. 후원자를 모아 아이들을 돕고 주민 자립을 위한 신용조합을 만들었다. 이 이사장은 “봉사할 때 이상하리 만치 힘이 샘솟았다. 이것이 천직(天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굿네이버스 설립·운영 25년 만에
회장직 물려준 이일하 이사장
북한에 젖소 500마리 보내기도
“정부 아동학대 전담기구 있었으면”

하지만 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개인 빚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결국 모든 걸 내려 놓고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당시 고교생이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가 계속 남 돕는 일 하고 살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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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은 “NPO(비영리단체)가 지역사회로 들어가 시민과 더 가깝게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5년 동안 굿네이버스를 이끌어 온 그는 지난달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사진 신인섭 기자]

그는 91년 굿네이버스(Good Neighbors)를 설립했다. 이후 25년간 국내부터 해외 사업까지 쉼 없이 진행해 왔다. 96년에는 국내 비영리단체(NPO) 최초로 유엔(UN)에서 ‘포괄적 협의 지위’를 받았다. 이를 부여받으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 11개 위원회의 모든 회의에 참여해 의제를 제안할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굿네이버스 공채 1기인 양진옥(44) 사무총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굿네이버스 사옥에서 이 이사장을 만났다.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지금 어떤가
“직원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병상에 있는 날 찾아왔다. 내가 말을 못하니 ‘회장님, 이 결정에 찬성하면 웃어주세요’ 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 이렇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25년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94년 르완다 내전 때 의료단을 구성해 현지 난민촌에 갔다. 정말 끔찍했다. 매일 대형 트럭이 시신 5000여 구를 실어 옮겼다. 오염된 호수물을 마시면 바로 콜레라에 걸렸다. 거기서 콜레라 환자를 하루에 200명씩 살렸다.”
북한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97년 유엔에 속한 NPO 단체의 장으로서 처음 평양에 갔다. 이후에도 120차례 넘게 평양을 방문했다. 젖소 500마리를 보내고 공장을 지어주기도 했다. 2008년 이후에는 가보지 못했다.”
가장 힘든 활동이 뭔가.
“굿네이버스는 각 지역마다 아동학대 신고센터를 두고 학대 피해 아동이 머무는 그룹홈을 운영 중이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매일 신고 전화를 받느라 직원들이 녹초가 된다. 정부 차원의 아동학대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
NPO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동 단위로 최소한 한 개 이상의 NPO가 주민과 함께 지역사회의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풀뿌리 NPO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 기부금이 민간 단체에 고루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굿네이버스는 100만 명 넘는 회원이 모여 이제 국내 토종 NPO 중 유일하게 기부금 기준 10위권 안에 드는 단체가 됐다. 그 과정에서 내 나름의 족적을 남긴 것 같아 뿌듯하다. 당장은 미국 굿네이버스 지부로 가서 글로벌 자금 유치, 대북 지원 등의 소임을 다하려 한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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