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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의 미래의 밥상] 찌개엔 백진주벼, 카레엔 삼광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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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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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비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1980년대와 대비해 현재 쌀 소비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지난해 한국인은 1인당 평균 62.9㎏의 쌀을 먹었다. 쌀 소비가 빠르게 줄어드는 이유는 급격하게 파고드는 서구화된 식생활과 다양한 대체식품들 때문이다. 쌀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은 상차림을 중심으로 하는 한식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식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녹아 있는 문화다. 한국인이 쌀을 덜 먹으면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 하나가 소멸될지 모른다.

음식 따라 어울리는 쌀 품종 달라
쌀도 골라 먹는 즐거움 있어야

우리는 왜 쌀을 덜 먹을까. 식당에 가면 쌀의 원산지 표시는 해 둬도 품종에 대한 표시는 거의 없다. 소비자들이 별로 궁금해하지 않으니 표시할 이유가 없다. 물어봐도 어떤 쌀을 쓰는지 아는 직원이 없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이것저것 섞은 ‘혼합미’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모르는 혼합미로는 식당이 특색 있는 밥맛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 밥맛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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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대형 마트 매대에 쌓여 있는 다양한 품종의 쌀. [사진 문정훈]

얼마 전 중국 산둥성을 방문했을 때 마트의 쌀 매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20~30여 품종의 다양한 쌀이 매대를 채우고 있었다. 포장지에 품종명이 커다랗게 표시돼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판매되고 있는 쌀 품종의 절반 이상이 다양한 향미(香米) 계열의 쌀이었다. 중국 산둥성은 전통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단립종의 무향미를 주로 소비해 왔다.

하지만 최근 3~4년간 쌀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다양한 향미 계열의 단립종이 주류 시장에 진입했다. 중국 소비자들은 다양한 쌀 품종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품종을 골라 밥을 지어 먹는 시대로 이미 들어섰다. 반면 국내 마트에 가면 여러 브랜드의 쌀이 있지만 품종은 몇 가지 안 된다. 중국에서 이미 대중화된 향미를 국내 마트에서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실제 전 세계 쌀 시장에선 다양한 향의 쌀을 즐기는 것이 트렌드가 됐다.

향미 계열 쌀로 밥을 지으면 그윽한 향기가 집 안을 가득 채워 밥을 잘 안 먹는 아이의 식욕도 돋울 수 있다. 전통 된장찌개와 함께 먹을 땐 차진 식감이 강한 저아밀로오스 계열의 쌀인 백진주벼를 써보자.

밥알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골든퀸3호벼는 향미이면서 동시에 저아밀로오스 계열의 쌀이니 볶음밥이나 덮밥, 초밥처럼 밥알 하나하나 살아 있는 식감을 원할 때 특히 좋다. 오늘 저녁 인도식 카레를 먹는다면 부들부들한 삼광벼와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된다. 초대한 손님에게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시각적 효과를 주고 싶다면 간척지에서 재배한 신동진벼가 제격일 것이다. 핵심은 서구식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우리의 식탁에 맞게 쌀도 함께 다양화하고 변해 가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의 밥상은 각자의 입맛에 맞는 쌀, 같이 먹는 음식과 어울리는 쌀을 골라 재밌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상차림이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트에서 쌀을 사는 게 마치 백화점에서 다양한 옷을 쇼핑하는 것 같이 즐거운 경험이어야 한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즉석밥도 다양한 품종별로 나와 있어 마치 여러 가지 맛의 젤리를 골라 먹듯 밥을 골라 먹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아 참! 식당에 가면 어떤 쌀을 쓰는지도 가끔씩은 물어보자. 식당이 밥맛에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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