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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국가 중국이 바다를 탐하는 이유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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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18면

일러스트 강일구

대륙 국가 중국이 지금 남중국해를 탐낸다. 중국은 청나라 시대의 지도를 근거로 남중국 해상에 9개의 가상의 선으로 이어진 ‘9단선(Nine Dash Line)’을 정하고 이 지역 모두를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1945년 끝난 중일전쟁 후 일본으로부터 이 지역의 영유권을 회수했고, 58년 중국령으로 선포했다는 것이다. 남중국해의 90%에 달하는 이 지역은 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브루나이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중첩된다. 중국의 이 같은 행동은 강대국이 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석유 해상 수송로의 확보와 미·중 패권 경쟁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대국의 조건은 해양 강국명나라는 정화의 대항해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 34개 조공국을 거느린 최강의 해양대국이 됐다. 명나라 다음은 청나라다. 바다를 본 적이 없는 기마민족 출신 청나라 황제의 눈에는 해군이 아프리카까지 유람이나 다니면서 군량미나 축내는 존재로 보였다. 해양의 중요성을 간과한 만주족 청나라는 세계 최강이었던 명나라의 함대를 장작처럼 패서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이렇게 해군을 약화시킨 결과 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해 서구 해양국가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중국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은 모두 해상으로부터 왔다. 그래서 중국의 건국자인 마오쩌둥은 53년 연설에서 ‘해양 강군’을 역설했다.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으려면 반드시 강한 해군을 건설해야 하고, 미국이 장악한 태평양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결코 태평(太平)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이미 강한 육군과 공군을 가지고 있고 제국주의가 감히 중국을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려면 강대한 해군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사를 보면 세계의 패권국은 모두 해양 강국이었다. 고대의 아테네·카르타고, 중세의 베네치아·포르투갈·스페인, 근대의 네덜란드·영국·일본·미국 모두 해양 강국이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할 만큼 성장한 중국은 이젠 노골적으로 패권을, 그리고 해양 강국을 꿈꾼다. 중국은 2012년 11월 제18차 당대회에서 ‘해양강국 건설’을 선포하고 해양굴기를 시작했다.


중국은 베트남 EEZ에 속하는 남중국해의 서사군도(西沙群島·파라셀) 인근 수역에서 2014년부터 석유 시추를 강행했고, 필리핀 앞바다 남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들리)에 인공섬과 활주로를 건설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가상의 국경선인 ‘남해 9단선’을 중심으로 이 지역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지역”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베트남 전쟁 중이던 74년에 군사력을 동원해 서사군도를 점령했고, 이는 나중에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79년 중·베트남 전쟁 당시 시진핑 주석은 중국중앙군사위 판공실 비서(中央?委?公?秘?)로 실무 책임자였다. 그래서 시 주석은 베트남 문제에는 일가견 있다.


미국에 목줄 맡기는 ‘믈라카 딜레마’남중국해 주변 200㎞ 반경에 세계 인구 5억명이 살고 있고 남중국해의 해상 교통량은 수에즈 운하의 3배, 파나마 운하의 2배나 된다. 중국 전체 무역량의 90%가 남중국해를 통과한다. 세계에는 3개 수송로의 급소가 있다.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그리고 믈라카 해협이다. 중국에 있어 믈라카 해협은 석유를 비롯한 중요 물자의 수송로로서 중요하다.


중국은 2003년 11월 후진타오 주석 시절부터 태평양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을 의식해 에너지 수송로의 안보 취약성을 거론하면서 ‘믈라카 딜레마’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중국은 연간 원유 수입량 2억7000만t 중 80% 이상을 미국의 통제하에 놓인 믈라카 해협을 통해 가져온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해로 안보에 의존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중국은 믈라카 해협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중·러, 중·카자흐 송유관을 통해 원유의 10%를, 중·미얀마 송유관으로 8%를 수입하고 있다. 또 중·파키스탄 송유관 신설을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믈라카 해협의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중국이 2014년부터 서사군도 베트남 수역에서 경제성도 별로 없는데도 석유 시추를 강행하고, 남해 9단선을 중심으로 한 남중국해에 대해 자국의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은 모두 원유 수송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다.


미·중 간 ‘패권 이전’의 문제남중국해 문제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Pivot to Asia) 전략’과 중국의 영토 분쟁 전략인 ‘핵심 이익(Core Interest)’의 충돌이다. 중국은 그간 남중국해의 영토 분쟁에 대해서는 양보나 거래가 불가능한 ‘핵심 이익’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핵심 이익 지키기 정도가 아니라 제3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국의 권한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영향력 행사’ 단계로까지 나가고 있다.


중국의 이런 행동의 배경에는 미국의 무기력함이 있다. 그간 미국은 아시아에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지배력을 행사했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 무기력해지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를 내세웠지만 중국의 지속적인 도발을 억제하는데 한계를 보였다. 중국과 베트남의 서사군도 문제, 중국과 필리핀의 남사군도 문제에서 미국은 외교적 수사만 날렸지 실제 행동에 나선 것이 없었다.


미국은 국방 예산의 축소로 항공모함 운행을 축소하고 있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반군 지원에도 손을 놓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소위 이슬람국가(IS) 세력의 확장에도 지상군 투입을 할 여력도 없는 무기력함을 드러냈고 이것이 결국 유럽 난민문제와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를 초래한 원인을 제공했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남중국해 영토 주장은 일단 주변국에 대한 무시전략으로 나오고 있다. 필리핀이 제소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을 무시하고, 제3국인 미국의 개입도 차단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중국이 2020년까지 두 번째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장기적으로 항모를 4척까지 늘리려는 것도 미국이 태평양에 배치한 항공모함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 국제관계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적극적인 영토 분쟁에 나서는 것은 경제적으로 이미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져버린 당사국들이 중국과 군사적·경제적 충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남중국해 영토분쟁은 필리핀·베트남과의 문제라기 보다는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고 이는 중국이 미국과 아시아를 두고 벌이는 전략적인 패권 경쟁으로 봐야 한다. 미국이 남중국해를 자유로이 통행하는 ‘항행 자유권’을 빌미로 중국이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하면서 벌이는 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실력을 보인다면 미국은 태평양에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면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는 종이 호랑이의 립서비스일 뿐이다.


전병서?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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