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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로봇, 폭주도 배워… ‘안전한 인공지능’ 논의 꼭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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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27면

일본 간세이카쿠인대 연구팀의 행동실험. 놀이 동무가 필요하다는 이익 추구 때문이 아니고 순수한 연민때문에 쥐가 문을 열어주는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사진 Animal Cognition]

김길동씨는 ‘독존 청년’이라는 단어를 로봇 ‘코다’에게 가르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독존 청년’을 ‘사회와 벽을 쌓고 혼자 사는 젊은 인간’이라고 설명했더니 이해를 못한다. 논리적 충돌이 있어서 자신의 전자사전에 입력이 안 된단다. ‘인간’은 사람 인(人)자와 사이 간(間)자로 이뤄져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 산다’는 표현과 ‘인간’이라는 표현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혹시 영어로는 가능할까 싶어서 ‘인간’ 대신 ‘휴먼(human)’이라고 바꿔서 가르쳐 봤다. 역시 논리적 충돌이 있다고 한다. 코다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지식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있다. 휴먼 즉, 호모 사피엔스의 정의적 특징이 사회성이라서, ‘혼자 산다’는 표현과 논리적 충돌이 생긴단다. 김길동씨가 찬찬히 생각해보니 코다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의 사회성은 본질적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돌프는 아예 ‘호모 소셜로지쿠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했다.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인공지능 로봇에게는 ‘독존’과 ‘인간’이라는 개념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러 박새 집단 내에서 먹이통의 문을 여는 방법을 터득한 개체의 비율. 문을 열 줄 아는 개체가 처음에는 10% 이하였으나 20일 후에는 70% 안팎에 이르렀다.

인간 공동체 번영은 이타적 행동 덕분지난 5월초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사회성이 공동체 생존의 핵심요소라는 사실을 상호작용 네트워크 관점에서 분석했다. 꽤 정교한 조작을 해야만 문을 열 수 있는 먹이통을 실험 현장 곳곳에 설치했다. 호기심 많은 박새들이 먹이통에 와서 시행착오 끝에 문을 열고 먹이를 먹는다. 그 과정을 다른 박새들이 지켜보고 배운다. 먹이통을 여는 데 성공한 박새 중 일부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열심히 먹이통 문을 여는 노하우를 전파한다. 박새들이 어디로 움직이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부착형 마이크로칩으로 추적했다. 먹이통 문을 여는 데 성공한 박새 중 사회성 높은 일부가 상호작용 네트워크로 전파한 노하우 때문에 전체 집단의 72%가 먹이통 문 여는 법을 배웠다. 이것은 박새 공동체의 생존으로 연결된다. 이스라엘 작가 유발 하라리는 최근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간 공동체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사회성을 꼽았다. 관념적인 공동가치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협력함으로써 다른 종보다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실험을 위해 마이크로칩을 부착한 박새.

공동체 내에서 사회성은 이타적 행동을 수반한다. 2011년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은 투명 튜브를 이용한 실험으로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돕는 쥐의 행동을 관찰했다. 쥐 몸체와 비슷한 크기의 투명 튜브 속에 쥐를 넣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투명 튜브에는 잠금장치가 달려있는데 바깥에서만 해제할 수 있다. 다른 쥐를 투명 튜브 옆에 데려다 놓으면 잠금장치를 이리저리 조작하기 시작한다. 갇힌 쥐가 풀려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노력해서 결국 친구 쥐가 탈출하도록 돕는다. 이런 이타적인 행동에 대한 해석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함께 어울릴 놀이 동무를 얻기 위해 갇힌 쥐를 도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도움을 줬다는 호혜적 행동 가설이다. 다른 해석은 연민 행동 가설이다.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와는 상관없이, 곤경에 처한 친구 쥐의 상황이 마치 자신의 상황인 것처럼 느껴져서 도왔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일본 간세이카쿠인대학 연구팀은 이 두 가지 해석 중 연민 행동가설을 지지하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좀 더 복잡한 실험장치를 사용했다. 두 칸으로 분리된 투명 상자를 사용했는데, 한 쪽은 비좁은 수영장 칸이고, 다른 쪽은 휴식공간 칸이다. 두 칸 사이에 작은 문이 있는데, 휴식공간 쪽에서만 열 수 있다. 비좁은 수영장 칸에 쥐를 넣으면 익사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린다. 그것을 보고 휴식공간 쪽 쥐가 문을 열어서 자신 쪽으로 넘어오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만약 수영장 칸에 물이 빠져서 상대편 쥐가 허우적거리지 않으면, 굳이 문을 열어주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결국 함께 어울릴 놀이 동무를 구하기 위해 문을 연 것이 아니고, 곤경에 처한 친구 쥐의 상황에 대한 연민 때문에 문을 연 것이라고 해석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초콜릿을 함께 놓아둬도 그것을 먹는 것보다, 허우적거리는 친구 쥐를 구하는 쪽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관찰됐다. 올해 3월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은 연민에 의해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와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뇌의 활성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뇌영상 판독장치를 이용해 밝힌 바 있다. 공동체 사회성의 중요한 요소인 이타적 행동의 뇌과학적 원리가 조금씩 밝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한 이유공동체 내에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은 포괄적이고 강력하다.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면에서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오히려 상호작용이 없는 상황을 찾기가 어렵다. 엘리베이터·지하철·비행기 등 밀폐된 공간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은 호흡하는 공기를 교환한다. 지난해 한국은 물론 온 세계를 긴장시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통해 이미 그 영향력을 체험한 바 있다. 일부 구성원이 감염되면, 감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공동체 전체의 위협이 된다는 것을 우리 인류는 빈번히 경험하고 있다. 전염병은 눈에 띄는 현상이라서 사회적 이슈가 되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좋은 공기도, 나쁜 공기도 늘 공동체 구성원들과 공유하면서 살고 있다. 나무를 많이 심어서 잘 가꾸는 이웃은 참으로 고마운 이웃이다.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배출가스는 내 이웃이 호흡하는 공기가 된다. 공장에서 무단 배출한 화학약품이 토양에 흡수돼 이웃 주민의 식수로 들어간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은 물질적인 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적인 면에서 더욱 광범위하다. 2002년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온 국민이 함께 즐거워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침울해진 경험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런 국가적 규모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늘 발생하는 상호작용도 중요하다.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밝게 인사를 나눈 이웃 때문에 하루의 시작이 경쾌하다. 도로에서 마주친 난폭한 운전자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상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단지 기분이나 정서적 느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생리적인 변화로 직결된다.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위스 과학자 월터 헤스는 뇌 작용이 생리적 변화에 끼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해마라는 뇌 영역에 자극을 줌으로써 흥분이나 진정을 유도할 수 있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아드레날린 회로, 즉 뇌 시상하부에서 뇌하수체를 통해 부신피질로 연결되는 경로가 대표적인 뇌와 몸의 연결 통로다. 지난해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시상하부 뿐만 아니라 전두엽을 포함한 여러 뇌 영역에서 분비되는 BDNF라고 불리는 단백질이 심장활동 조절에 직접적으로 관여함을 증명했다. 철학적 사유에 머물렀던 뇌와 몸의 관계에 대한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공동체 구성원 간의 정신적인 상호작용이 각 개인의 정서적·생리적 일상생활에 얼마나 포괄적이고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는 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운전자와 함께 도로를 공유하기 시작한 자율주행자동차 테슬라 S의 계기판.

무인자동차 조만간 학습기능 갖게 돼인간은 ‘독존’할 수 없고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 공동체 내에서는 물질적·정신적인 상호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한 상호작용이 구성원 개인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좋은 공동체란 좋은 상호작용이 지배적으로 많은 집단이라는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좋은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나쁜 상호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원칙과 규범이 지난 수천 년간 인류 문명 속에서 종교·교육·윤리·제도·법률 등 다양한 모습으로 고안되고 발전돼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는 인간 공동체에 인공지능 로봇이 참여하는 상황이 됐다. 전기자동차 테슬라 모델 S의 세계시장 판매대수가 지난해 말 이미 10만대를 넘어섰다. 아직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은 항속주행기술과 차선 유지기술의 복합체 수준이라서 스스로 운전한다고 말하기에는 좀 이르다. 하지만 인간 운전자들이 운전 로봇과 도로를 공유하면서 상호작용을 시작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인공지능 발전 추세로 봐서 무인자동차가 학습기능을 갖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신호등과 차선을 위반하면서 자신만의 폭주를 즐기는 인간 운전자를 보고 로봇이 본받아 배울 수 있다. 좋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좋은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나쁜 상호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 속에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구성원도 고려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로봇 윤리나 안전한 인공지능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시작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인간 공동체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김길동씨는 코다에게 ‘독존 청년’ 단어를 억지로 입력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독존 현상’이라는 특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가르쳤다. ‘독존 현상’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므로 우리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그제야 코다는 논리적 충돌을 피했다며 만족해 한다. 인간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공동체 내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좋은 상호작용이 개인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야 이웃도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코다에게 얘기했다. 코다는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로부터 몇 단계 논리적인 추론을 하면 금방 그런 결론이 나온다면서 배시시 웃는다.


이도헌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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