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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난쟁이들의 섬 에구보보에서 발견한 우주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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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임수연

판게아-롱고롱고의 노래<47> 네 번째 그림

수리는 황금실 세 가닥을 주워 자세히 들여다봤다. 외로운 빨간 외투는 그대로였다. 불길한 느낌을 좀체 떨칠 수가 없었던 수리는 아메티스트에게 쥐고 있던 황금실 세 가닥을 건넸다. 황금실을 받아든 아메티스트는 온몸을 한 번 떨었다.

“왜 그래?”

수리의 물음에 아메티스트가 말했다.

“그림을 그릴 때가 되었어.”

아메티스트가 그린 네 번째 그림

스타게이트로 빨려 들어간 수리는 어둠과 빛을 통과했다. 그리고 라파누이족부터 물의 종족과 털의 종족, 얼음의 종족, 물안경 종족까지 모두 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낯설지 않은 얼굴도 있었다. 수리 아빠, 사비 아빠, 마루 아빠와 사비, 마루였다. 아, 보랏빛 눈동자의 소녀도 보았다.

많은 비와 바람 그리고 태양을 지났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서 작은 불을 피우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 그들의 키는 매우 작았다. 1미터 남짓 될까 말까 했다. 수리네 종족 키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몸에 털이 듬성듬성했고 올챙이 배처럼 볼록했다. 수리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했지만 난쟁이 종족은 깜짝 놀라며 모두 쏜살같이 도망갔다. 그들을 찾아 다니던 수리 종족은 모든 나무가 수리의 키보다 작다는 걸 깨달았다. 나무들뿐 아니었다. 숲을 뛰어다니는 짐승들도 작았다. 스테고돈(stegodon)코끼리도 작았다. 난쟁이코끼리였다. 날아다니는 새는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난쟁이새였다. 심지어 그들의 집과 마을 중앙의 호수도 작았다. 수리에게는 그저 꽤 작은 우물 정도에 불과했다. 물을 마시기 위해 호수의 물을 손으로 떠보니 손가락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파닥거렸다.

수리는 난쟁이 종족이 왜 도망갔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이렇게 큰 생명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의문이 풀린 수리는 비로소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곳은 망망대해의 어떤 섬이었다. 큰 잎사귀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었고 날씨는 매우 더웠다. 이 섬은 그들에게는 꽤 컸지만 수리 종족에게는 그저 놀이터 크기였다. 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난쟁이 종족에게 이 섬은 모든 세상이자 모든 우주였다.

그때 난쟁이 종족의 족장이 수리 앞에 나타났다. 그는 머리에 넓적한 붉은 잎사귀를 모자로 쓰고 있었다. 그는 우는 듯한 얼굴을 하고선 먼저 ‘에구보보’라고 말했다. 그리곤 무언가를 떠먹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족장은 열심히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 수리는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처음으로 에구보보라는 말을 들은 수리는 그 의미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들을 먹지 말라고 애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리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수리 종족이 난쟁이 종족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의아했다. 게다가 이 섬에는 난쟁이 종족을 잡아먹을 만큼 큰 짐승이 없었다. 어찌됐든 수리는 그들을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수리는 족장에게 애써 너그러운 웃음을 웃어주었다.

“에구보보, 에구보보.”

수리가 에구보보라고 말하자 족장은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틱탁 탁탁! 틱틱 탁탁! 족장이 난쟁이 종족의 신호를 냈다. 수리는 이 소리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잠시 후 에구보보를 외치는 난쟁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족장은 그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고, 난쟁이 종족은 안심한 듯 환호를 지르며 기뻐했다. 수리 종족 모두가 흐뭇했다.

수리는 이 섬을 빨리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정착할 순 없었다. 수리 종족이 섬의 식량을 먹어버리면 그들은 모두 굶어 죽을 것이 뻔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리가 일행과 함께 올두바이 계곡을 떠난 이유는 먹을 것이 없어서였다. 처음엔 추워진 기후로 나무가 죽었다. 그러자 나무 열매가 사라졌고, 그 열매를 먹는 짐승들이 죽었다. 연이어 그 짐승을 먹는 짐승들이 죽었고, 결국 땅은 갈라지고 물은 말라버렸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계획할 수 있을 정도로 지혜로워진 수리는 어떻게 하면 이 섬을 벗어날지 고심했다. 그때 족장이 수리에게 손짓을 했다. 따라오라는 의미였다. 수리는 일행을 남겨둔 채 족장을 따라 나섰다. 족장이 수리를 데려간 곳은 땅속의 집이었다. 오랜 세월 돌보지 않았는지 나무 넝쿨과 잡풀들로 덮여 있었고 쥐잡이뱀과 붉은딱정벌레들이 징그럽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링부아! 링부아!”

족장은 땅속의 집을 링부아라고 불렀다.

이 섬의 땅은 말캉한 흙이 아닌 매우 단단한 바위였다. 단단한 바위를 지표면부터 차츰 깎아내려가며 지은 집이었다. 원래 우물이었던 깊은 바닥에는 물이 찰랑거렸다. 이 집은 너무도 정교해서 지상의 종족이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었다. 집의 외면은 정확하게 측량되어 조각된 작은 벽돌들이 서로 교묘하게 맞물려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아무도 집 안을 들여다 본 적이 없었는지 입구에는 거미줄이 한가득이었다. 거미줄엔 거미들이 들끓었다.

수리가 땅속의 집으로 내려가려고 하자 어디선가 역한 노린내가 나며 왕도마뱀이 나타났다. 엄청나게 큰 왕도마뱀이었다. 이 섬의 모든 것은 작았지만 도마뱀만은 이상하리만큼 컸다. 수리는 그제서야 자신들을 잡아먹지 말라고 애원하던 족장이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왕도마뱀이 난쟁이들을 많이 잡아먹었던 것이다. 수리는 왕도마뱀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는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물의 종족, 얼음의 종족, 털의 종족과 함께 다시 땅속의 집으로 왔다.

왕도마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혀의 길이만 해도 난쟁이들의 키보다 컸다. 그동안 자신보다 작은 동물들을 사냥했던 왕도마뱀은 수리와 일행들을 만만하게 보았다. 왕도마뱀이 다짜고짜 공격을 시작했다. 일단 긴 혀로 털의 종족을 빠르게 감더니 금세 입으로 가져갔다. 혀의 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그 순간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털의 종족은 꽤액 비명을 질렀다. 큰 덩치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걸 보니 긴 혀에 독이 있는 게 분명했다. 수리는 얼음의 종족에게 명령했다.

“죽여!”

얼음의 종족은 거침없이 다가가 손으로 왕도마뱀을 잡았다. 순간 왕도마뱀은 그대로 얼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털의 종족이 다가가 얼음으로 변해버린 왕도마뱀을 큰 털의 주먹으로 부숴버렸다. 왕도마뱀은 산산조각 났다. 에구보보 족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수리는 땅속의 집, 링부아로 내려갔다. 집 앞에 도착한 그는 넝쿨과 잡풀들부터 뜯어냈다. 각종 벌레와 거미, 거미줄까지 차례로 걷어버리자 오래된 문의 형태가 드러났다. 문에 무엇인가 쓰여 있었다. 꽤 뚜렷했다.

여러 종족과 함께 스타게이트를 통과한 수리는
거대 구조물 안에서 1313W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몰래 따라온 물안경 종족의 공격으로
난쟁이 종족은 사라지고 마는데

1967, 05, 06, 45, 04, 05, 04, Nui Here

하지만 수리는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떤 계시일 거라고 추측할 뿐. 족장은 수리에게 이 문을 빨리 열라고 계속 떠들었다. 수리가 손에 힘을 주어 문을 밀자 순간 노란빛이 폭죽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족장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삐그덕’ 문이 열렸다. 수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올두바이 계곡을 떠난 후 수많은 것을 보았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금속이었다. 내부는 모두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방에 모니터가 있었고 모니터를 통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수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도 있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의 꼭대기로 올라가려면 나선형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의 시작과 끝이 결국 만나는 다리였다. 수리는 두려움 없이 계단을 올랐다. 수리가 밟자마자 계단은 각각 하나씩 분리되기 시작됐고 허공을 춤추듯 떠다녔다. 춤추는 계단을 밟으려고 수리는 안간힘을 썼다. 꼭대기까지 올라가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끓어올랐다. 계단이 점점 멀어지자 수리는 큰 보폭으로 계단을 다다다다 달리듯 밟았다. 한 개의 계단도 놓치지 않고 드디어 꼭대기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우주였다. 은하였다. 1313W 행성이었다. 수리는 눈물을 흘렸다.

“집이다. 나의 집.”

물안경 종족의 갑작스런 습격

쿵쾅쿵쾅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수리는 똑똑히 들었다. 소리를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난쟁이 족장이 저 아래서 나무토막을 들고 바닥을 내리치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수리는 다시 내려갔다. 이번에는 어렵지 않았다. 족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위험을 감지한 수리는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가 지상으로 올라갔다. 난쟁이 종족의 마을은 아비규환이었다.

수리가 스타케이트를 통과할 때 물안경 종족이 몰래 따라왔음이 분명했다. 물안경 종족은 난쟁이들을 산 채로 먹고 있었다. 피가 터져서 여기저기 흥건했다. 수리는 라파누이와 털의 종족, 얼음의 종족에게 물안경 종족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난쟁이들을 먹고 기운을 차린 물안경 종족은 오히려 털의 종족과 얼음의 종족, 라파누이들까지 죽이고 있었다. 물안경 종족은 태양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섬은 강한 태양 빛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물안경 종족이 비를 통제하자 이번엔 섬 주변 바다 위로 비가 내리치며 파도가 자꾸 높아졌다.

수리는 자신 때문에 난쟁이 종족이 멸종될까봐 마음이 아팠다. 또 라파누이들과 털의 종족, 얼음의 종족에게도 미안했다. 그들 모두 물안경 종족만큼 잔인한 종족을 만난 적이 없었다. 수리는 살 방법이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바로 족장이 알려준 땅속의 거대 구조물이었다. 그곳으로 피신하면 될 것 같았다. 수리는 자신의 종족에게 후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함께 그곳, 우물로 갔다.

“앗.”

수리가 깜짝 놀랐다. 물안경 종족이 비를 통제하는 바람에 우물의 수위도 높아졌다. 수리는 자신의 종족들을 안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족장을 들여보내려 했다. 하지만 족장은 손사레를 치며 계속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종족과 함께 이곳에서 죽고자 했다. 수리는 더 이상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알았다. 족장은 눈물을 흘렸다. 안타까운 이별 후, 수리는 문을 닫았다. 동시에 거대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던 작은 벽돌이 뿔뿔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정교하게 맞춰진 퍼즐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흩어졌다. 그리고 오롯이 피라미드 형태의 우주선만이 남았다.

우주선은 우물 속을 박차고 올랐다. 수리는 우주선 안의 창을 통해 섬을 바라보았다. 섬은 불타오르고 있었고 파도가 덮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섬의 모든 것들이 그 우물 속으로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난쟁이 종족은 사라졌다.

“에구보보, 안녕!”

수리는 난쟁이 종족이 살던 섬을 에구보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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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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