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남중국해 판결 법적 구속력”…한국은 “평화적 해결을” 세 번 반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기사 이미지

14일(현지시간) 미국 호놀룰루 할레코아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협의에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이 깜짝 방문해 아시아재균형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왼쪽부터 스기야마 신스케 일 외무성 사무차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 바이든 부통령, 임성남 외교부 1차관. [사진 주한 미 대사관 트위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판결에 대해 미국·일본과 한국 사이에 인식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중국이 패소한) 이번 법원(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을 지지합니까?”

한·미·일, 헤이그 판결 뒤 첫 회동
외교차관회의서 미묘한 입장차
“정부, 미·중 대립 상황 고려하고
독도 분쟁까지 감안해 신중해야”

14일 오후(현지시간) 미 호놀룰루 할레코아호텔의 루아우 가든. 한·미·일 외교차관이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 외무성 사무차관이 아시아·태평양 안보 연구센터에서 4시간여에 걸쳐 현안 협의를 한 뒤 결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3국 차관의 만남은 지난 12일 필리핀·중국 중재재판소의 판결 이후 처음이었다.

임 차관은 일본 기자의 질문에 “어떤 의견 차이도 없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남중국해 분쟁이 외교적 노력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스기야마 사무차관도 “전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링컨 부장관은 “3국은 남중국해 문제의 기본 원칙에 있어 완전하게 뜻을 함께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내내 한국과 미·일 사이 미묘한 입장 차이가 엿보였다.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발언한 블링컨 부장관은 “이번 판결은 남중국해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판결은 중국과 필리핀 양측 모두가 지켜야 할 ‘법적 구속력’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스기야마 사무차관은 “해양안보와 관련해 완벽하게 법치에 기반한 해결이 중요하다”며 “해양법협약에 근거해 내려진 이번 사법부의 결정은 최종적인 ‘법률적 구속력’을 지닌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차관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남중국해 문제가 외교적 노력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만 말했다. 판결의 의미와 효력에 대한 평가는 배제된 표현이었다. 임 차관은 기자회견 중 이 문장만 세 번 반복했다. 반면 블링컨 부장관과 스기야마 사무차관은 법치(rule of law), 적법성(legality), 법적 구속력(legally binding) 등의 단어를 거듭해 썼다. 임 차관 발언에는 없는 단어들이었다.

임 차관은 ‘국제규범(international agreements)’이라고 했지만 블링컨 부장관과 스기야마 사무차관은 ‘국제법’(international law)’이라고 한 것도 달랐다.

외교가 소식통은 “(임 차관 발언은) 미·중의 대립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며 “일본이 독도에 대한 억지 주장을 하면서 이 문제를 국제법정으로 가져가려고 하니 국제법으로 맞붙었을 때 유불리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 입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