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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왕위 승계 밝힌 일왕 “요즘 나이 느낄 때도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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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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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1월 도쿄에 있는 참의원 개원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도쿄 AP=뉴시스]

아키히토(明仁·82)일왕이 수년 내 왕위를 나루히토(德仁·56) 왕세자에게 물려줄 뜻을 밝혔다는 소식에 일본 정계는 놀라면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왕실 제도의 기본법인 황실전범(皇室典範)에 일왕의 생전 퇴위에 관한 규정이 없는데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의향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황실전범 개정 등 이뤄져야 가능
성사까지 수년 걸릴 것으로 예상
스페인 등 유럽선 생전 승계 잦아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은 13일 저녁 보도가 나간 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총리 주변 인사는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놀라워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아베 총리는 14일 “사안의 성격상 언급을 피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양위 문제가 민감하고 복잡하다는 방증이다.

아키히토 일왕이 왕위를 물려주려면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자민당 의원들은 일왕의 정확한 의사 확인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NHK는 “일왕이 이미 궁내청 관계자에게 퇴위의 뜻을 밝혔고, 미치코(美智子) 왕비와 장남 나루히토 왕세자, 차남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도 받아들였다”며 “일왕 스스로 내외에 마음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왕은 5년 전쯤부터 일관되게 생전의 퇴위 생각을 보여왔다고 한다. 지난해 기자회견에서는 “나이를 느낄 때도 많게 돼 행사 때는 실수한 적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왕의 진의 확인 후에는 황실전범 개정 등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의 황실전범은 일왕 사후 왕위 계승 순위에 따라 차기 일왕이 즉위하도록 돼 있다. 그런 만큼 국회에서 생전의 퇴위가 가능하도록 하는 황실전범의 개정이 필요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때인 2005년에는 전문가 자문기구가 여성 일왕을 인정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정리했으나 황실전범의 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하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조치가 있을 수 있다. 두 방안 모두 성사까지는 수년은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왕의 퇴위 의사에 관한 궁내청의 공식 발표가 이뤄진 뒤 황실전범 개정 검토 준비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4일 전했다.

일왕의 생전 퇴위가 가능해지면 에도(江戶)시대 말 고가쿠(光格) 일왕(1780∼1817년 재위) 이래 약 200년만이다. 근대 이래 지속돼온 일본 왕실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셈이다. 왕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연호(현재 헤이세이·平成)도 새로 제정된다. 일본과 달리 유럽 왕실에서는 국왕이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아트릭스 네덜란드 여왕은 74세였던 2013년 재위 33년을 끝내고 빌렘 알렉산더 왕세자에게 왕위를 넘겼다. 2014년에는 39년간 재위한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양위한 바 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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