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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문화부장>소련영화『전쟁과 평화』보게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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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영화『전쟁과 평화』를 안방에서 감상할 기회가 지금으로선 아리송해지는것 같다. MBC―TV가 정초연휴에 방영하려던 이 영화가 일단그 방영계획이 보류된 것이다.
MBC―TV는 대문호「톨스토이」원작의 이 영화를 한 미국영화사로부터 2만달러에 수입, 우리말 녹음까지 끝내고 방송심의위원회에 회부했으나 거기서「공산권의 영화니 만큼 관계당국과 좀더 협의해서 결정해야될 것」이란 회답을 얻은 모양이다.
방송심의위원회는「작품에는 일단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면서도「소련영화」라는것 때문에 어딘가 꺼림직 했던것 같다.
사실 우리는 소련영화에 대해선 낮설다.
『전쟁과 평화』도 소련측이 5년에 걸쳐 만든 작품으로 이데올로기 냄새가 없고 원작에 충실했다는 것. 감독「세르게이·본다르추그」가 그쪽에선 꽤 알려진 사람이고 이 작품으로 68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는 것등 밖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톨스토이」와 그의 대표작『전쟁과 평화』에 대해선 아주 같았다. 지금도 어느 시골 중학교에서조차 교사가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권고하는 고전작품 속에는 으례 이 작품이 끼어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영화가 원작에 충실했다면 그내용도 짐작이 안될리 없다.「나폴레옹」군의 전략을 맞은 러시아민중의 항거, 각성하거나 몰락하는 귀족계급, 전란에서 꽃피는 사람과 용기와 이상. 이런 이야기 등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될 것이다.
비록 소련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로서의『전쟁과 평화』도 우리에게 낯설지는 않다. 벌써 오래건 미국에서 제작돼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전쟁과 평화』에는 주인공「피에르」에「헨리·폰더」,「나타샤」에「오드리·헵번」이 주연했다. 당시 이 영화에는 프랑스 못지 않은 소련귀족층의 호화로운 생활이 화면 가득히 전개됐고「나폴레옹」을 저격하려다 끝내 자제하는 주인공의 비폭력·평화애호정신이 크게 부각됐었다.
어디 그뿐인가. 비록 소련에서 제작되지 않았을 뿐이지 소련 (러시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았다.「오마·샤리프」와「줄리·그리스티」가 주연한『닥터·지바고』,「소피아·로렌」과「마르첼로·마스트로얀니」가 주연한『해바라기』등은 비록 그것이 소련땅에서 촬영되지 않고 제작사가 미국이라도 소련인·소련 풍물의 영화가 아닌가.
이처럼 원작도 잘 알고 영화장면도 짐작이 가고 이미 소련배경의 영화가 눈에 익은데다 문제가 된 작품이 이데올로기 선전이 아닌 문학작품으로서의 원작에 충실했다는 데도 과연「소련=공산권국가」라는 딱지 때문에 기왕 수입한 영화를 방영 못할게 있을까.
소련은 멀리는 6·25동란의 배후조종자요, 가까이는 KAL기를 격추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국가의 발전을 늦출수는 없는 것이다.
극작가 유덕형씨가 모스크바에 다녀온 적도 있었고 얼마전엔 소련 운동선수들이 대거 입경, 국제대회를 가졌다.이들의 유니폼엔 CCCP의 마크도 선명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영화『전쟁과 평화』가 공산국가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에 방영이 보류된다면 88올림픽과 그 이후까지를 염두에 둔 우리의장기적인 상황변화와 어울리지 않는게 아닐까.
이 작품을 문제삼는다면 차라리 우리 TV에 수시로 방영되는 크렘린광장 앞의 소련군사 퍼레이드를 문제삼는 것이 나을 것이다. 거기엔 그렘린지도자들의 모습과 막강한 그들의 군사력이 한눈에 들어오니까 말이다.
소련은 물론 사회주의국가고 예술은 당과 인민의 행복에 봉사하도록 규정돼 있다. 영화도 예외없이 이데올로기 선전에 이용되고 있다. 가끔 서방국가에서 소련 영화를 수입, 개봉하는데 이데올로기 냄새가 짙은 것은 개봉해 봤자 빈축만 살테니까 대개 역사물을 수입한다. 소련도 이런 사정을 알고『전쟁과 평화』『시베리아』같은 영화를 제작, 수출하는 것이다.
5년전 파리에서도 개봉된『시베리아』는 2차대전 참전 용사가 고향에 귀환해 유전개발에 성공하나 지하에서 터져 나온 가스폭발로 사망한다는 줄거리다. 여기서 이데올로기 냄새가 나는 장면이라면 죽은 주인공에게 당간부가 훈장을 추서하며 당과 인민을 차양하는 연설장면 정도다.
만약 문제가 된『전쟁과 평화』에 좀 거북한 장면이 있다면 부분적인 삭제로 방영은 돼야하지 않을까.
최근 공연예술은 물론 도서·잡지의 사전 심의를 장학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 분야의 십의 책임자들이 바뀌면서 부쩍 종전과는 달리 검열을 강화한다고 한다.
잘 알만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으나 이번『전쟁과 평화』의 방영 보류에는 바로 그런 측면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은 극소화될수록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몸과 마음이 세계로 뻗어 나가야할 우리가 단견적 기준의 검열로 시계가 막히고 마음이 닫히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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