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법정’ 중국이 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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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권 주장 법적 근거 없다” 판결…시진핑 “남중국해 섬은 중국 땅” 반발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가 12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중국이 패소하면서 동아시아 곳곳에서 해상 분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아울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 갈등과 맞물려 동아시아 주도권을 놓고 미·중 대립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소 “인공섬 건설도 불법”
미국 “중국 의무 준수를” 압박
사드 맞물려 군사 긴장 고조

PCA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중국의 구단선(九段線)에 대해 “중국이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는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며 “유엔해양법 협약과 배치되는 구단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구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그은 U자 형태의 9개 선으로 남중국해 해역의 80%를 차지한다. 중국은 구단선 내 350만㎢에 이르는 해역이 중국 관할이라고 주장한다.

재판부는 중국이 구단선을 근거로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조업과 석유 탐사를 방해한 데 대해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필리핀 어선은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인 이 해역에서 어업 활동을 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건설한 것도 불법 활동으로 결론 났다. 재판부는 “중국이 인공섬 건설 활동을 통해 되돌릴 수 없는 생태환경 파괴를 일으켰다”며 “인공섬과 시설들도 모두 불법”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중국은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던 구단선의 위법성 여부, 인공섬 법적 지위에 대한 판단에서 모두 패소했다.

중국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남중국해 도서는 중국 영토”라며 “중재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판결 직후 중국이 시 주석의 발언을 공개한 건 이례적이다. 리커창 총리도 “중재법정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즉각 밝히는 등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중국 외교부는 “필리핀 전 정부가 제기한 소송 자체가 위법적이고 PCA는 영유권 분쟁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며 “중국의 영토주권과 해양권익은 중재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분쟁 해결에 기여하는 중대한 판결”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관련 기사
① 중국이 남중국해에 그은 구단선, 역사적 근거 인정 못받아
② 정부 “미·중 어느 한쪽만 만족시킬 순 없다”



미국은 “이번 판결은 중국·필리핀 양쪽 모두에 구속력이 있다”며 중국을 압박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국제해양법 조약에 가입할 때부터 당사국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정에 동의한 것”이라며 “양국이 자신들의 의무를 준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중국해에선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판결이 나오기 앞서 인민해방군에 전투준비태세를 명령했다고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이 보도했다. 이에 맞서 미국도 현재 남중국해 인근 필리핀 동쪽 해역에 항공모함 2척을 대기시켜 놓고 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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