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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KTX서 좀비떼와 전쟁…무서울까 후련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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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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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에서 살아남은 승객들이 좀비들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 공유·마동석·정유미 등 주연 배우들은 좀비 역 배우들이 너무 고생하는 탓에 힘들다는 말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NEW]

좀비들이 테크노 음악에 맞춰 브레이크 댄싱 을 하듯 현란하게 움직인다. 그 무대는 다름 아닌 서울발 부산행 KTX. 좀비들이 열차에 올라타고, 기차 위로 떨어지고, 달리는 열차에 매달린다. 20일 개봉하는 ‘부산행’ 얘기다. 총제작비 115억원(순제작비 85억원). 한국영화 사상 좀비 소재의 첫 블록버스터라 흥행 결과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총제작비 115억 ‘부산행’ 20일 개봉
관절 마디 꺾으며 달려드는 좀비역
안무가에게 반년간 동작 훈련 받아
영화세트, 부딪혀도 안다치게 제작
결정적 장면서 신파 강요는 아쉬워

열차에 탄 펀드 매니저 석우(공유)와 한 주먹 하는 상화(마동석), 고등학생 야구 선수 영국(최우식)은 각각 딸 수안(김수안),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 여자친구 진희(안소희)를 구하기 위해 좀비들이 들어차 있는 열차 칸칸을 헤치고 나간다. 그 과정이 빠르고 박력 넘치게 펼쳐진다.

‘부산행’이 선보이는 화끈한 박력과 쾌감은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상영에서도 해외 여러 매체로부터 호평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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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 역의 배우들에게 촬영 장면과 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연상호 감독(왼쪽).

이 영화를 연출한 연상호(38) 감독은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사회 비판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 인물이다. ‘부산행’은 그의 첫 실사영화 연출작이다. 연 감독은 서울역에 좀비가 출몰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서울역’(8월 개봉)을 준비하던 중 부산행 KTX를 타고 내려가다 ‘부산행’의 줄거리를 떠올렸다. ‘서울역’의 제공·배급사인 NEW는 ‘서울역’을 실사영화로 다시 만들자는 제안을 했던 터. 자연스레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실사영화 ‘부산행’ 모두를 연 감독이 연출하게 됐다.

지금껏 만들었던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 것. 연 감독이 ‘부산행’을 찍으며 세운 가장 큰 목표였다.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좀비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본격적으로 처음 시도하는 만큼 극 중 다른 요소들은 아주 리얼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주요 공간이 되는 KTX 열차와 여러 역사(驛舍)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좀비들 역시 살점이 많이 떨어져 나가 있거나 하는 식의 너무 끔찍한 분장은 피했다.

이 영화의 박진감을 만들어내는 일등 공신은 한 장면에 적게는 20명, 많게는 100명까지 등장하는 좀비들이다. 관절의 마디마디를 꺾는 듯한 움직임으로 재빠르게 달려드는 좀비떼의 위력을 선보이기 위해, 배우들은 길게는 촬영 반 년 전부터 박재인 안무가에게 동작 훈련을 받았다.

박재인 안무가는 ‘부산행’뿐 아니라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좀비의 움직임은 물론 무당의 굿판과 귀신 들린 어린아이의 몸동작을 디자인한 바 있다. “‘부산행’의 좀비들은 공포영화 ‘사일런트 힐’에 등장하는 괴기한 생명체의 움직임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노센스’에 나오는 도자기 인형의 움직임을 참조해 디자인했다”고 박 안무가는 설명했다.

연 감독을 비롯한 ‘부산행’의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은 좀비 역 배우들을 영화의 가장 큰 공로자로 꼽았다. 지난 여름 뙤약볕 아래, 몇 시간에 걸쳐 특수분장을 한 채 카메라 앞에서 한시도 쉬지 못하고 팔다리를 꺾는 고생을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촬영에 임했기 때문이다.

KTX 열차는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실제 KTX 열차를 모델로 했지만, 좁은 공간을 다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촬영 장비와 스태프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고려해 만들었다. 객실 안 액션이 많은 만큼 배우들이 넘어지고 부딪혀도 상처를 입지 않는 소재를 사용했다. 공유·정유미·마동석 등 다양한 성격과 입장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호흡도 조화롭다.

‘부산행’은 올 여름 극장가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흥행 기대작들의 포문을 여는 작품이다. 이후 27일에는 할리우드의 특급 액션 시리즈 ‘제이슨 본’과 ‘인천상륙작전’이, 8월 4일에는 DC 만화의 악당들이 출동하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개봉한다.

“‘부산행’이 단순히 상업적인 요소들만 조합한 작품이었다면 재미를 못 느꼈을 거다. 사회파 애니메이션을 연출해 온 연상호 감독이 블록버스터 안에 색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거라 기대했다.” 공유의 말처럼 ‘부산행’은 좀비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면서도, 좀비라는 소재를 통해 한국사회의 지옥 같은 풍경을 간결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해 보인다. 훨씬 대중적인 실사영화에 도전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은 연상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극 후반 결정적 장면에서 신파적 감정을 강요하는 대목은 옥의 티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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