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소신 밝힌 김종인·김무성…당론으로 가두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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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77)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20대 국회 최고령 의원이다. 그는 중앙일보와 한국정치학회의 정책·이념조사(본지 7월 5, 6일자 1·4·5면)에 자필로 답을 적었다. 그가 선택한 답변 중 법인세 인상 문제는 당 총선 공약과 달랐다. 그는 법인세 인상(최고세율 22%→25%) 대신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항목을 골랐다. 김 대표는 5일 “법인세를 인상한다고 세수효과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선 특정 세제를 올리기보다 전반적 세제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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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7월 5일자 1면 ‘의원 정책·이념조사’ 시리즈.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최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초과이익공유제를 논의하는 토론회에 나가 ‘열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처럼 본지 설문에서도 법인세 문제에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답을 내놨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를 25%에서 현행 22%로 인하한 이래 새누리당은 재인상에 7년간 반대해 왔다. 김 전 대표의 선택은 당론과는 달랐다. 그는 대기업 규제 문제엔 “경제 민주화를 위해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종인 대표와 같은 생각이었다.

비정규직, 여성사회진출 문제 등
여야 의원들 당론 넘어 공감대
초당적 정책 타협 가능성 확인

20대 국회의원에 대한 정책·이념조사는 4·13총선 직후부터 2개월 동안 진행했다. “국회의원 생각을 재단하지 마라”거나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답변을 피한 의원도 83명 있었지만 217명이 응해 자유롭게 소신을 밝혔다.

설문 결과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국회의 하이브리드(혼성)화’였다. 특히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메신저 감청은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적은 분야에선 할당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사회정책에 대한 입장엔 여야 구분이 없었다. 소속 정당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김종인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가 당론에서 이탈해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같은 입장을 보인 것도 마찬가지다. 김종인 대표가 4일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개정안은 소액주주 의결권을 강화하고 자회사 경영진의 부정에 대해서도 소송이 가능하게 하는 등 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민주 김부겸 의원은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 (여당 의원들처럼) 튼튼한 한·미 동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야당 의원도 많다”며 “의원들도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이념에 얽매이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정치학회장인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19대 국회도 개원 당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북한인권법을 임기 막바지에 통과시켰다”며 “20대 의원들은 19대보다 외교안보·경제·사회 분야의 구체적인 정책에서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타협의 여지가 훨씬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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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더민주와 국민의당 의원의 90% 이상이 찬성하고 새누리당 의원의 55%가 찬성한 법인세 인상 문제, 비정규직 보호 강화 문제(새누리당 77.2%, 더민주 96.5%, 국민의당 97.0%),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기본소득제도 도입 문제(새누리 62.0%, 더민주 98.8%, 국민의당 84.8%) 등에선 초당적으로 의견이 접근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정치에서 결과물이 쉽게 나올 것이란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한 가지 때문이다. 바로 각 정당의 당론이다. 당론은 의원들의 생각을 옥죄어 타협의 가능성을 닫아 버리는 가두리였다. 20대 국회만큼은 당론으로 정책·이념을 가둬선 안 된다.

정치부문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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