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제헌절 맞은 87년 '직선제 헌법' 멤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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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의 관심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 빨리 대선을 치러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요."

지금 우리가 16년째 누리고 있는 '1987년 시민헌법'을 만든 '8인 정치회담'의 여당 협상팀이었던 이한동(李漢東.69) 전 총리. 그는 당시 민정당 총재인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후보가 헌법개정안 마련의 전권을 협상팀에 맡긴 배경을 이렇게 회고했다.

야당 협상팀을 이끌었던 이중재(李重載.78)당시 통일민주당 부총재는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김영삼(金泳三.YS).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의 정치적 타협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다가올 대선에서 둘 다 출마할 게 뻔한데 상대방이 될 경우 그 다음을 자기가 노리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임기는 길면 안된다는 게 양쪽의 일치된 생각이었어요. 장기독재 방지를 위해 대통령 연임은 안된다는 생각도 같았죠. 그래서 나온 게 5년 단임제였답니다."

55주년 제헌절을 맞은 17일 李전총리와 이중재 전 의원은 "87년 시민헌법은 헌정 사상 여야 합의에 이뤄진 최초의 개헌"이라며 "헌법 작성에 참여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이전 헌법의 평균수명은 4년10개월로 누더기 헌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8인 정치회담은 노태우 후보가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함으로써 7월 24일 발족했다. 민정당에선 당시 윤길중(尹吉重.작고).권익현(權翊鉉.69).이한동.최영철(崔永喆.68)의원이, 통일민주당에서 박용만(朴容萬.작고).이중재.이용희(李龍熙.72).김동영(金東英.작고)의원이 참여했다.

통일민주당은 야권 및 재야정치의 오너였던 양김씨가 만든 사실상의 유일 야당이었다. 8인회담에서 YS 입장은 박용만.김동영씨가, DJ입장은 이중재.이용희씨가 각각 대표했다.

이한동 전 총리는 "발족 직후 한달 이상을 매일 국회 본청 5층에 모여 하루 8시간씩 강행군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개헌안은 10월 12일에 국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고, 10월 27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16년이 흘러 9차 헌법 개정의 주역들은 대부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세 사람은 작고했다. 한나라당 상임고문인 권익현 전 의원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가 최근 최병렬(崔秉烈)대표 초청 모임에 나타났었다.

이중재 전 의원도 한나라당 상임고문으로서 崔대표에게 "한나라당이 노인당 이미지를 바꾸지 않으면 내년 총선이 어렵다. 물갈이를 대폭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등 정치 2선에서 자기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이용희 전 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 금배지를 노리고 있다.

8인회담 참여자 중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이한동 전 총리뿐이다.

6.10 민주항쟁의 열매인 9차 개헌은 통상 '대통령 직선제 헌법'이라고 불린다. YS.DJ의 집요한 요구에 따라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비상조치권이 삭제됐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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