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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독자투고] 여학생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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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성평등에 대해 논하는 기사의 댓글을 읽다 보면 남성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왜 힘들어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여성 상위시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성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언도 볼 수 있다.

아마도 사회 구조와 오랜 인식이 빚어낸 몰이해일 것이다. 나와 같은 여학생의 눈으로 본 여러 사례들은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과 다르다.

#1
SNS에서 논란이 된 사진이 있다. 통통한 여성과, 마른 남성이 함께 걸어가는 사진이다. 해당 게시물에는 “연애에 여성의 외모가 다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멋있어 보이려고 썼겠지만 사실은 편견에 가득한 생각이다.

여성을 기본적으로 평가의 대상으로 여기며 그들의 특성을 비교하는 것은 인권침해다. 마른 체형을 비롯한 외모, 어투, 성격 등에 대해 사회가 강조하는 ‘여성성’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일 자체가 잘못이고 악습이다.

#2
최근 고려대학교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논란이 된 후 올라온 일부 남성들의 글이 화제였다. “남학생들끼리 이런 건 별 일이 아닙니다. 너무 충격 드시지 마세요”, “상상과 현실은 구분하실 줄 아셔야죠. 저희들이 행동을 행하지 않는데 일반화하시는 건 좀 아닙니다”라는 반성 없는 글이 올라왔다.

2013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 여성청소년 중 42%는 다형태의 성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청소년의 경우 가해자 성이 동성인 경우가 많으나, 여성청소년들의 경우엔 압도적인 비율로 ’남성‘이 가해자다. 학생과 학생 사이의 범죄뿐만이 아니다. 주변에서 받은 제보에는 아르바이트 피해 사례도 상당히 많았다. “너는 가슴이 큰데 그에 비해 너무 다리가 굵네”, “나와 연애하자, 내가 잘해줄게” 같은 말들은 너무도 흔하다.

“남자들을 일반화하지 말라”고 하는데, 여성이라고 ’선량한 남자‘와 ’범죄자‘를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경계를 지적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3
“여자는 수학을 못할 거야, 그러니까 이공계 계열에서는 남자들이 좀 더 많지.”

생각보다 널리 수용되는 편견 중 하나다. 이 논리대로면 현재 학생수는 남학생이 많으니 이과가 많아야 하나 현실은 그 반대다.

한 여학생은 과학고 입시 준비 당시 또래 남학생들로부터 “물리학과는 ‘남초’ 학과로 유명한데, 여자애가 물리 고른 애가 있어? 남자 꾀려고?”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들이 이런 여성 비하를 멈춘 계기는 바로 학원 시험 성적이 발표된 이후였다. 자신보다 높은 여학생의 성적을 보고 가만히 있게 된 것이다. 이 실화에는 두 가지 현상이 담겨 있다. 이공계 학문을 수학하는 여성에 대한 비하, 그리고 기본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학업 성적이 열등하다는 뿌리 깊은 편견이다.

이 글을 쓰고자 SNS에서 제보를 받았다. 한 학생은 학교 교사로부터 문제가 있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여자는 무조건 잘 생기고 돈 많고 차 있는 복학생 오빠 만나야지”, "남자는 얼굴 못생겨도 매력 있으면 되지만 여자는 얼굴이 예뻐야 뭐라도 되니까. 아, 너넨 다 예뻐!“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사로부터 잘못된 성 가치관을 주입받은 경험이다.

#4
광주 광산구 의회에서 ‘저소득층 지원물품에 생리대 추가 건의안’에 관한 논의 중, 한 남성 의원이 “생리대라는 말은 거북하다, 위생대로 바꾸자”고 제안해 논란이 됐다. 생리는 자궁이 착상을 위해 아기집을 짓다가 그 혈벽이 무너지며 피가 배출되는 것, 즉 생명을 준비하는 여성에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생리는 결코 거북스럽고 역겨운 과정이 아니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여성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기본적인 경외심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이 암담하다”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말은 상식적이고 당연하다. 동시에 이 사회에 수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알려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서로의 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숭고한 것이고,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여성청소년의 시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아래 질문들에 대해 답해보길 바란다. 밤 10시에 길을 걸을 때 불안해서 주먹 꼭 쥐고 경계하며 집 근처 길을 걸어봤는지, 지하철에서 ‘오늘은 성추행이 없겠지’ 하고 걱정해 봤는지, 성폭행에 대한 낮은 실형 선고율에 대신 좌절해 봤는지, ‘남녀’는 그냥 수용하면서 ‘여남’이라고 하면 ‘메갈이냐’라고 질문 받을 때의 비참함을 아는지, 미래 남편이 ‘대리 효도’를 시키지는 않을까 걱정해 봤는지, 가정 폭력을 미리 걱정해 봤는지, 대학교 가서 안주거리가 될까 걱정해 봤는지, 여대를 향해 드세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을 보고 한숨 쉬어 봤는지.

성평등 요구는 갈등의 씨앗이 아니다. 성평등 의식의 확산으로 모두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사회를 이뤄내는 것이 앞으로 이 세상을 오래 살아갈 여학생들, 아니 전체 여성의 소망이다.

글=이지윤(이화여자외고 3) TONG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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