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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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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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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뉴욕특파원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사실 예상을 뒤엎은 사건이다. 베팅업체들은 잔류 확률을 70% 이상 봤다.

시장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할 때 요동친다. 브렉시트 결정 직후 며칠간 글로벌 시장의 혼란스러운 움직임은 당연한 것이었다.

글로벌 경제는 이제 새로운 저성장 시대를 각오해야 한다. 브렉시트가 야기한 불확실성이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아직도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로선 불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브렉시트 같은 상황은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 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자초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우조선 분식과 부실 감독 사태가 그런 경우다. 문제의 씨앗은 어쩌면 대학 교수 출신인 홍기택 대통령직 인수위원이 산업은행 회장에 임명됐을 때부터 뿌려졌는지 모른다. 2013년 4월 갓 취임한 홍 회장을 인터뷰했다. 당시 그는 정책금융을 강화하겠노라고 대놓고 말했다. “대기업의 유동성 위기와 벤처 지원은 산은이 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뒤에서 받쳐주니까”라고 했고,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란 말이 있듯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창조경제가 된다”고도 했다. 대우조선은 “매각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임명은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공기업 기관장 인사였다.

그는 이른바 ‘낙하산’이었다. 그에게 처음 물은 것도 낙하산 논란이었다. 그는 “나 낙하산 맞다.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장담했다. 지금 그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을까.

낙하산이 나쁜 것은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국책은행 같은 공기업은 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찍어 내려보낸 인사가 장(長)으로 오면 그때부턴 정부의 말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 감독당국이 눈치를 보기도 한다. 공공부문의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의 경제위기(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경제에 생겨난 나쁜 습관이 낙하산 환영이다. 공기업 간부들은 낙하산 인사 발표에 쾌재를 부른다. 공무원들의 간섭과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위인설관과 성과급 파티 등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도 수월해진다. 모럴 해저드가 조직을 파고든다.

중앙부처 관료 사회에도 이런 분위기는 만연해 있다. “힘센 실세가 장관으로 와야 일하기 쉽다”는 논리다. 열심히 해서 장관이 되겠다는 패기와 열정은 많이 사라졌다. 낙하산 실세들의 선심성 정책 남발을 막으려는 치열함도 떨어진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뿌리 깊이 남는다. 그들이 장악한 조직에 복지부동과 비효율을 침투시켜 나라 경제를 속으로 골병들게 한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제발 낙하산 인사를 근절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외부에서 어떤 악재가 터져도 한국 경제가 꿋꿋이 버틸 수 있다.

이 상 렬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