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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공사업 확대, 취업기회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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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실업자 문제는 한마디로 뾰족한 수가 없다고 본다. 단기적으로야 교대근무제나 연장근무철폐등으로 당장 어느정도 실업자를 줄일수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단기적 처방으로 치료될수 있는것이 아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과거의 확대성장기에서 저성장기로 들어가는 과도기에 치러야하는 홍역일 수도 있다.』
경영자총협회의 황정현전무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실업자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있다.
우리경제는 수출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그런만큼 세계경기전망이 불투명하고 미국의 수입규제강화등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져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마당에서는 고용문제도 뚜렷한 묘약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정답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전히 어렵다고 팔짱만 끼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근로자가 일자리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생존이 위협받는 것을 의미한다. 구미선진국수준의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돼 있지 못한 우리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부도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대책을 마련해 왔다.
환율인상이나 수출금융지원, 대기업에 대한 여신규제완화등은 직접고용증대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수출증가, 투자확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용의 안정을 꾀한 조치였다고 봐야한다.
9월에는 주택건설촉진, 간척사업, 직업훈련의 확대실시등을 골자로 한 고용안정대책을 발표했고 예산면에서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도로건설등 정부투자사업을 확대키로 하는 한편 내년 예산에서는 5천억원의 경기대책비를 특별히 계상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조치가 어느정도 고용안정에 기여했는지 혹은 앞으로 기여하게 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환율인상이나 수출금융지원이후 수출이 호전되어 상반기중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수출실적이 하반기에는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만은 사실이다.
경제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내년의 세계경제가 올해와 마찬가지로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경기는 환율인상이나 주택건설촉진책의 효과가 반영되어 6.5∼7%의 성장이 가능하게 될것이며 고용문제도 더이상 심각한 사태로는 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기획원은 이제 정부가 할 수 있는 경기부양책이나 고용대책은 다 동원했으며 앞으로는 그 성과가 현실경제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는 자세다.
그러나 일부학계와 업계에서는 정부의 경기대책이 미온적이고 그나마 시기를 놓침으로써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비관하고 보다 적극적인 경기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박영기교수(서강대·산업문제연구소장)는 『정부가 물가 안정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공공사업을 확대하여 취업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근교수(성대)도 『지금의 취업난은 하루아침에 닥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여러 요인의 복합적인 결과』라고 지적하고 『정부는 경기부양으로 적극적인 고용증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상공회의소의 송경로조사부장은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시기를 놓쳐 성과를 반감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이같은 학계와 업계의 지적대로 이제까지 정부의 고용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우선순위는 언제나 안정화시책의 뒷전에 밀려온 것이 사실이며 지금도 외채부담에 발목이 잡혀 더 이상의 적극적인 대책은 생각도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그동안 실시한 고용대책이라는 것은 기능인력에 대한 단기적인 대책에 그치고 고학력인력의 실업이라는 새로운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경직된 경제정책구조아래서 노동부는 저성장을 전제로 한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고용안정대책」을 마련하고 있어 주목된다.
장·단기로 나누어진 이 대책은 우선 장기적으로 고용보험법과 고용대책법의 제정을 추진, 고용보험법에서는 실업수당의 지급, 능력개발, 기능훈련비의 보조등을 시도하고 있다.
고용대책법에서는 고용구조개편에 따른 전직훈련, 장기실업자의 기능습득훈련에 대한 보조금지원, 직업전환수당등을 규정할 예정이다.
단기고용대책으로는 어떠한 형태로든 「대안」없는 대량해고사태만을 막겠다는 원칙아래 ▲근로시간과 근로일수를 법정기본근로시간 이내로 단축하고 ▲교대근무제를 활용, 2교대근무를 3교대로 늘리며 ▲주휴제 혹은 연월차실시등으로 감원요인을 줄이도록 하는 방안▲호황기에 대비한 교육훈련실시 ▲기업에 실직자 대책을 위한 부대사업 개발권장등을 검토중이다.
학계에서도 노동부의 고용대책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학자가 있다.
이대근교수는 실업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는 산업구조의 첨단기술산업으로의 이행에 따른 구조걱 문제로 보고 기술진보에 따른 부가가치를 세금으로 흡수, 실업수당제등을 실시할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무기교수는 실업문제가 과거에는 기능공을 주로 한 저학력층위주로 나타났으나 최근에는 대학정원증가등으로 고학력 실업증가로 바뀌어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사실을 중시, 이에대한 대책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한정적 처방이기는 하나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대한상의의 송경로조사부장도 감원보다는 급여수준을 낮추더라도 사용자나 근로자가 함께 위기를 이겨내는 슬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정부가 기업과 근로자사이의 중개역할을 해줄것을 건의했다.
지금의 취직난·실업문제는 수출감소·투자부진에 따른 경기순환적 요인과 조선·해운·건설산업의 사양화에 따른 산업구조적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수있다.
경기순차적 요인은 수출지원, 재정투융자의 확대등 임시대용조치로 어느정도의 구제가 가능하다고 할수있으나 우리의 실정은 외채문제에 발목이 잡혀 정책선택의 폭이 극히 좁다.
산업구조적 요인은 산업구조의 고도화라는 더 큰 과제와 직결되므로 단기적으로는 손을 쓸수없는 문제다.
우리가 안고있는 문제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김국후·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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