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의 현장과 여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9일 민정 당사는 평소와는 달리 노태우 대표위원·정순덕 사무총장·이세기 총무·박준병 국책 조정 위원장 등 상근 멤버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당 간부들이 나타나지 않아 한산.
민정당은 이날 상오의 당직자 회의를 취소하고 하오 2시 의원총회만 열 예정.
28일 국회 부의장 선거 후 노태우 대표위원에게 사퇴 의사를 표명한 이세기 총무는 29일 상오 내내 자택에서 머무르면서 『밤새 곰곰 생각해 봤다』면서 『일부에서는 민정당의 이탈이 항명도, 불복종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고 하지만 우리만 상처 없이 넘길 사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사퇴 의사를 고수.
한편 29일의 의총에서는 이번 10.28 파동시 비교적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김식·조기상 의원 등이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키로 하고 있는데 한 당직자는 책임을 운위 할 사안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의 지시가 전도되어 나타났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의 매듭은 지어져야 할 것 아니냐고 촌평.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며 『농수산위 소속 의원과 점심을 함께 했더니 모두가 한결같이 이용희 의원 지지에 반대의견을 내놓아 듣기만 했을 뿐』이라고 해명.
○…국회 부의장 선출 파동 대책을 논의한 29일 상오의 신민당 확대 간부 회의와 정무 회의는 시종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주류측의 「반당 행위자 징계 주장」에 대해 비주류측은「지도부 책임」으로 맞서 격론. 이민우 총재는 회의 벽두 『개헌 투쟁의 효율적 수행과 이번 쓰라린 경험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위해 환부는 도려내야겠다』면서 당명에 반해 부의장에 출마했던 조연하·김옥선·박해충 의원을 징계해 달라고 요구.
이어 이 총재는 『비록 치밀한 사술이더라도 거기에 속아넘어간 책임은 현 지도부에 있다』고 말하고 사태 수습 후 「책임」을 공약.
상도동계 간부들은 『반당 행위자에 대해서는 이 기회에 정리해야 한다』면서 『1백2명이라는 의석 수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대폭적인 수술을 주장했고 동교동계도 『이번 기회에 당을 같이 할 사람과 못할 사람을 구별해야 할 것』이라고 동조.
이에 반해 비주류측은 『표분석을 정확히 해야 한다. 신민당쪽 산표가 상당히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재단 일괄 사표 제출을 주장하고 있는데 일부에선 임시 전당 대회설이 성급히 나오기도.
한편 사표를 제출한 김동영 총무는 당내의 만류에도 불구, 철회할 뜻이 없다면서 이날 회의에 불참.
○…국회 부의장 선거의 이변을 낳은 1, 2차 투표 결과를 놓고 민정당과 신민당은 서로 책임 전가 식의 표 분석에 급급.
신민당측은 1차 투표에서 출석 의원 1백명에 이용희의원 92표, 2차 투표에서 98명 출석에 이의원 90표로 나와 겉으로는 8명만 이탈했다고 주장하고 조연하 의원의 득표는 모두 민정당 표라고 비난. 그러나 속으로는 적어도 30표 이상은 조의원 쪽으로 이탈했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당내의 확고부동한 비주류△상도동의 소극적 협조△동교동 표의 분산을 이유로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민정당 측에서는 1차 투표 때 신민당 의원들이 모두 투표했던 투표함에서 이용희 의원 표가 비공식적으로 34표 정도밖에 안나왔다고 주장, 따라서 신민당 안에서 실제로 이용희 의원에게 투표한 의원은 25명 정도일 것이라고 분석하고는 『2O 여표 밖에 확보 못하고 당선시켜 달라는 것은 무리』라고 비판.
또 이용희 의원을 겉으로 표명했었던 국민당측도 2차 투표에서는 모두 조연하 의원쪽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번 사건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 중의 하나는 민정당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왜 「각개약진」으로 행진했느냐는 점.
장성만 정책위 의장·이영일 총재 비서실장·송용식 의원 등 민정당 의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신민당 의원들, 특히 동교동계 의원들의 대정부 질문 때 과격 발언이 민정당 의원들의 심사를 그도로 뒤틀리게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 간부는 『김대중씨가 광주 출신 김녹영씨의 공석을 호남 출신 조연하 의원을 제쳐 두고 비 호남인인 이용희씨를 택한데 대해 호남 지역의 반발 분위기가 거세 여당 호남 의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
그 한 예로 호남 출신의 김식 농수산 위원장은 노골적으로 조 의원지지 의사를 밝히고 다른 의원들에게도 협조를 구하기까지 한 점을 당지도 부가 파악하고 있었을 정도.
○…2차 투표의 이변에 민정당 지도부는 대경실색, 권익현 상임 고문·이종찬 전 총무 등까지 합석하는 확대 간부 회의를 소집.
특히 총장·총무의 얼굴은 초긴장 되었고 노 대표도 전에 없이 굳은 얼굴.
1시간 여의 회의가 끝난후 심명보 대변인은 정순덕 사무총장과 이세기 총무가 책임을 느끼고 사의를 표명했으나 노 대표가 『책임은 나에게 있다』면서 만류했다고 전언.
심 대변인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일단 유감을 표했으나 그렇다고 민정당이 죄인의 심정은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 달라』고 주문.
그는 또 사견임을 전제, 이번 건이 △국무 위원 불신임같이 소속 의원들이 절대절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고△총장·총무의 지시가 전달 과정에서 다소 느슨하게 해석된 점도 없지 않았던 것이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
이와 관련, 노태우 대표위원은 『당 지도부가 다소 느슨한 태도를 보인게 이런 결과를 낸 것 같다』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을 밝히고 『일요일인 27일 골프 모임에서 이민우 신민당 총재에게 「당론을 통일시키기 위해 투표를 늦추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이 총재가 별일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는데 그때 내가 좀더 강력하게 요구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당직자는 『한번 뒤집어 보자는 일부의 의견까지 총장·총무가 앞장서 막았다』고 전하면서『사실 산표를 용인하는 것으로 이심전심이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냐』고 풀이.
○…조연하 의원은 부의장 취임 인사도 않고 총재실에 나타나 이총재에게 『죄송하다』며 인사말을 했으나 이 총재는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문 채 대꾸조차 안 해 어색한 분위기.
조 의원은 당선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정신이 흐려 지금 취임 인사도 못하는 판이니 회견은 내일 하자』며 『당 지도부와 충분히 상의한 뒤 취임 여부를 결정하겠으나 출마를 선언했으니 수락하는 쪽으로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조 의원은 『나로선 이렇게 될 줄 생각 않고 두 김씨에게 경종을 울리려고 출마했던 것이 의외로 당선됐다』고 말했으나 이런 결과를 예상했는가 라는 질문에 『떨어지려고 출마하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말해 앞뒤가 안 맞는 대답을 했다.
○…신민당은 2차 투표 후 의원총회를 열어 △조 부의장 불인정△조 의원 제명 결의 등 고조된 감정 상태대로 결론.
조 의원에 대한 제명 결의는 안동선·조순형·유준상 의원 등이 『당명을 어기고 조직을 배반했으며 민정당에 공작 정치의 호재를 줬다』는 이유를 들어 발의. 심완구·유성환 의원 등이『여당이 노린 것이 바로 이런 분열』이라며 반대 의사를 폈으나 강경론에 밀려났다.
박해충 의원은 『입당 파로서 소외감 느껴 오다 당의 단합을 호소하던 끝에 농반진반으로 출마 선언했었다』며 『조 의원을 제명하려면 나도 묻어 결론 내달라』고 강조.
의총이 끝난 후 총재단은 다시 총재실에 모여 민정당과 조 의원에 대한 성토를 재개.
이 총재는 침통하고 피곤한 표정 속에 『내 평생 이렇게 속아 보긴 처음이야』라고 혼잣말처럼 말하곤 일어서 나가려는 참에 김 총무가 들어서서 『총재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며 보도진들에 자리를 비워 달라고 요청.
김 총무는 이 총재에게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라고 말하며 사표를 제출.
이 총재는 사표를 받아 그 자리서 찢어 버리며 『책임이 있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일축했고 배석자들도 『절대 그래선 안 된다』며 극력 만류.
그러나 김 총무는 곧바로 자기 방으로 건너와 기자들에게 『원내 대표는 신의를 바탕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내 능력으론 더 이상 해 나갈 수 없다』면서 일방적으로 사퇴를 발표했고, 옆에 있던 홍사덕 대변인이 『사표 제출은 없었던 일로 결정됐다』고 즉석 정정.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