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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대표, 스튜디오에서 머리 깎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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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 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대표를 지난해 만났다.
만난 곳은 그의 회사 회의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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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회의실을 ‘피터팬의 다락방’이라고 소개했다.
상식을 넘어선 독특한 구조였다.
마치 소규모 공연장처럼 계단식 좌석이 있었다.
그곳에 앉으면 확 트인 유리창으로 석촌호수와 롯데월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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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그는 공간의 의미를 설명했다.
“마주 보는 회의실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공간을 창의적으로 만들면 사람의 창의성이 발휘됩니다.”
독특한 공간, 독특한 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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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표가 명함을 건넸다. ‘김봉진/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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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커피를 가져왔다. 종이컵에 ‘나를 따르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를 따르라’는 문구 때문인지 종이컵이 유별나게 보였다.

먼저 사무실을 둘러보는 게 어떠냐고 그가 제안을 했다.
공간을 통해 그를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터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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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문에 ‘노크하신 분은 방문해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발상의 전환이 문에도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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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벽면에 두 개의 포스터가 있었다.
배달 앱을 만든 회사다운 문구였다.
‘배고프니까 청춘이다’, ‘다이어트는 포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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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책상에 놓인 부채에 ‘대박 나길 바람’이란 문구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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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진열대엔 난데없이 때수건이 있었다.
그 때수건에 적힌 문구는 ‘다 때가 있다’였다.

별난 공간, 별난 문구를 보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그가 들려준 삶의 내력은 이랬다
공부는 못했고 그림 그리는 것만 좋아했다.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에 가지 못해 공업고등학교에 갈 정도로 공부를 못했다.
공고에서도 42명 중 40등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축구부였다.
다행히 실기시험만 치르는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그 후 네오위즈와 NHN(현 네이버)의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주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주류였기 때문에 맘껏 모험을 했다.
그곳을 나와‘우아한 형제’라는 기업을 창업했다.

별난 공간에서 별난 이력을 말하는데 그의 모습 또한 별난 편이었다.
유난히 짧은 머리에다 턱수염만 기른 모습이었다.
모든 게 별나 보이는 데 유독 그의 행동과 말투만은 진지하고 차분했다.
박장대소할 별난 이야기에도 빙긋이 웃는 게 전부였다.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 그의 진지함과 차분함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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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머리와 턱수염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다.

“워낙 내성적이었습니다. 어떤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의 특징을 살폈더니 ‘털’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깎고 수염을 길렀습니다. 이후에 실제로 디자인 잘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난히 내성적인 성격을 가리기 위해 오늘의 모습을 스스로 디자인했다는 말이었다.

머리를 직접 깎는지 그에게 물었다.
전기면도기로 직접 깎는다고 그가 답했다.

머리를 깎는 데서 오늘의 그가 비롯된 것이기에 사진으로 기록해 두고 싶었다.
그래서 면도기로 머리 깎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되물었다.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는데 면도기가 집에 있습니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음에 머리 깎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게 해주십시오”라며 부탁했다.
그도 그러마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얼마 전 그날 함께했던 취재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봉진 대표와 통화를 했는데요. 왜 스튜디오로 안 불러주는지 묻던데요.”

취재기자의 전화를 받고 아뿔싸 싶었다.
헤어지며 했던 약속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지난해 한 그와 나의 약속, 그는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약속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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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로 온 그가 전기면도기를 들고 왔다.
그런데 면도기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어떤 게 나을지 몰라서 두 개 가져왔습니다” 며 빙긋이 웃었다.
빙긋이 웃는 것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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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카메라 앞에 섰다.
전기면도기를 켜고 옷을 입은 채로 머리를 깎았다.
사진을 찍으며 약속을 잊지 않고 스튜디오로 온 이유를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난 날, 명함에 ‘경영하는 디자이너’라 적은 이유를 물어본 적 있었다.
그는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게 디자이너”라고 답했었다.
빡빡머리에 턱수염은 스스로 디자인한 '디자이너 김봉진'의 모습이다.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가장 김봉진다운 모습 일터다.
이 모두 스스로 머리를 깎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그 또한 이를 사진으로 기록해두고 싶었으리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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