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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TV 보는 남자] '마녀보감' 시청자를 사로잡은 염정아의 흑주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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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 제공]

저주 받은 공주 연희(김새론)와 비운의 천재 허준(윤시윤). 두 사람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판타지 사극 ‘마녀보감’(JTBC)은,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스펙터클한 영상미는 TV 드라마 ‘아랑사또전’(2012, MBC) ‘구가의 서’(2013, MBC) ‘야경꾼 일지’(2014, MBC) 등 판타지 사극의 계보를 잇는다. 무엇보다 빛과 어둠의 톤을 세심하게 조율한 덕에 시각적으로 입체감이 뛰어나다. 부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몇몇 장면은 납량물로써 손색없는 쾌감을 선사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궁에서 섬뜩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악귀, 녹음이 우거진 산에서 유영하듯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습을 매혹적으로 담아냈다. 자연스러운 CG(컴퓨터 그래픽) 디테일은 ‘판타지 사극’이라는 장르적 매력을 든든하게 떠받친다. 늑대·호랑이와 같은 야생 동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대호’(2015, 박훈정 감독)가 연상될 만큼 사실감이 넘친다.

이야기 전개도 흥미진진하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가련한 중전 심씨(장희진)의 욕망, 세자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대비 윤씨(김영애)의 욕심, 그 욕망과 욕심에 희생당하는 신묘한 능력을 가진 무녀 해란(정인선)의 원한, 해란의 저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왕실에서 버림받고 ‘서리’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 공주 연희. 각 인물의 사연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얽힌 극 초반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여기에 이 모든 감정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토해 내는 무녀 홍주(염정아)의 흑주술(黑呪術·악한 마법)은, 마치 결코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처럼 어둠이 지닌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냈다.

모든 배우가 제 몫 이상을 소화해 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성수청(星宿廳·조선 시대 무속 전담 기구) 대무녀 홍주 역을 맡은 염정아의 활약이 눈부시다. 그는 TV 드라마 ‘태조 왕건’(2000~2002, KBS1) 이후 약 15년 만에 사극으로 복귀했다. 흑주술에 능한 홍주는 나라의 안위보다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는 표독스러운 인물이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외모와 복수심에 불타는 독기 어린 눈빛. 홍주가 등장할 때 울려 퍼지는 음향만 들어도 등골이 절로 서늘해질 만큼 ‘마녀보감’에서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극 전반을 휘두르는 캐릭터 홍주는, 배우 염정아의 노련한 연기를 만나 파괴력을 더해 가고 있다.

사실 ‘마녀보감’은 저주의 ‘어둠’과 사랑의 ‘빛’이 팽팽하게 공존하며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런데 홍주 캐릭터가 너무 강렬한 탓에 빛보다 어둠이 도드라지는 형국이다. 2011년 방영된 TV 드라마 ‘로열 패밀리’(MBC)에서 금치산자 ‘K’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생동감 넘치게 연기했던 염정아. 그는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홍주의 삶을 흑주술 부리듯 완벽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판타지 멜로 장르의 달콤함보다 판타지 호러 장르의 서늘함이 압도적인 ‘마녀보감’이 과연 홍주가 뿜어내는 어둠의 기운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궁금하다. 그런데 만약 ‘감정의 알파고’ 같은 악역 홍주가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렇게 짜릿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TV 드라마 ‘왔다! 장보리’(2014, MBC) 속 극강의 악녀 연민정(이유리)처럼, 왠지 안타까운 감정이 앞설 것 같다. 매력적인 악역 그리고 그 악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배우의 힘은 이토록 크다.

글 진명현
노트북으로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 장르 불문하고 동영상을 다운로드해 보는 남자. 영화사 ‘무브먼트’ 대표. 애잔함이라는 정서에 취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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