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자르겠다는 김희옥, 버티는 권성동…친박계는 세 과시 모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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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장(오른쪽)이 20일 여의도 당사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권성동 사무총장(왼쪽)의 사퇴를 요구했다. [사진 강정현 기자]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장이 20일 당무에 복귀했다. 지난 16일 유승민 의원 등에 대한 복당 결정 과정을 문제 삼으며 칩거한 지 나흘 만이다.

권 “경질은 명분도 원칙도 없는 처사”
김 위원장 면전에서 사퇴 거부
비박 “특정 패거리 독재” 비판

하지만 이날 오전 새누리당사 6층엔 긴장감이 돌았다. 김 위원장이 전날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과 방문을 받은 이후 ‘비대위원장을 보필할 새로운 사무총장 인선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유탄’을 맞은 권성동 사무총장은 오전 9시에 예정된 비대위 회의에 앞서 김 위원장의 방을 찾았다. 권 총장은 “비대위원장의 사퇴 권고는 합리적인 이유도, 명분도, 원칙도 없는 처사”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권 총장의 말대로 김 위원장은 뚜렷한 경질 이유를 말한 적이 없다. 김 위원장은 정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16일의 복당 결정에 대해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신뢰도 없고 윤리와 기강도 없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당 내에선 친박계가 김 위원장을 통해 권 총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공교롭게도 권 총장(사시 27회)은 헌법재판관이자 검사 출신인 김 위원장(사시 18회)의 사시 후배다. 결국 김 위원장과 권 총장의 독대는 20분 만에 소득 없이 끝났다.

이후 열린 비대위도 갈등을 빚었다. 김 위원장이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려 하자 비박계 김영우 의원은 “발언 기회를 달라”고 했다. 김 의원은 “만약 권 총장에 대한 경질이 복당 문제와 연계된 것이라면 혁신비대위의 자기 부정이자 자기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회의가 끝난 뒤 친박계인 김태흠 제1사무부총장은 “관례상 해임, 경질로 교체할 때 최고위원회에서 의결을 거친 적이 없다”며 “어제 비대위원장의 의견으로 (권 총장의 경질은) 이미 결정 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친박 대 비박의 갈림은 여전히 뚜렷했다.

이날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는 친박계 의원이 몰려들었다. 3선의 조원진 의원을 비롯해 김태흠·김진태·박대출·이장우 의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17일 조원진 의원 등 8명의 의원이 정 원내대표의 사과와 권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회동했을 당시 “더 많은 의원의 뜻을 모으는 자리”라고 예고했던 대로 세 과시 모임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 박대출 의원은 “권 총장은 이번 사태로 무너진 당의 기강을 바로잡고 책임지는 차원에서 사무총장과 비대위원직을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소식을 들은 비박계 이혜훈 의원은 “권 총장이 물러나면 특정 패거리가 자기들 마음대로 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라며 “독재 정당이냐”고까지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10일 정책워크숍에서 ‘계파 청산’ 선언문을 발표했다. 최경환·김학용 의원 등과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참석한 뒤풀이 술자리에선 “계파” “청산”이라는 건배 구호도 외쳤다. 그 동영상은 인터넷 공간에서 아직 뜨근뜨근한 상태로 떠돌고 있다. 4·13 총선에서 완패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새누리당은 계파 싸움으로 지리멸렬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 공개 발언에서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말이 있지만 땅이 더 굳게 하기 위해선 말려줄 햇볕이 필요하다. 지금 새누리당에 필요한 햇볕은 바로 우리 내부의 단결과 존중, 양보와 배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단결과 배려라는 햇볕은 적어도 새누리당엔 먼 얘기다.

글=박유미·김경희 기자 yumip@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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