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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경화의 계보는…|고영복<서울대교수·사회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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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즈음 좌경화란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좀 신중하게 이말을 사용해야 된다고 본다. 원래 좌니 우니하는 말은 급진파와 보수파를가리키는 알이다.좌파가 급진주의이고 우파가 보수주의릍 지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물론 좌와 우는 아주 대립적인 것이기는 하나 그사이엔 중간파란 것이 있다.점진적 개량주의가 이에 속한다.
어느 사회나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다. 자유민주 사회에선 개인주의자가 우파로 되어있고 사회주의자가 좌파로 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파로서는 수정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있다.
대체로 개인주의는 극도의 개인적 자유를 부르짖는 자유방임주의자들이고 국가의 간섭이나 규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수정자유주의는 사람들이 사회악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한해서 국가가 규제해주기를 바란다. 사회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공공적 규제속에서 양립시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공공적 규제속에 모든 개인의 행동을 예속시키고자 한다.
개인주의와 사회주의를 양축으로 하여 우리나라의 위치를 찾아보면 아마도 수정자유주의쪽에 가까울 것 같다.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국가통제를 행사하고있기 때문이다. 수정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국가통제를 강행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차이는 그 통제기준이 개인을 위한 쪽이냐, 사회를 위한 폭이냐의 강조의 차이에 달려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상층계급 쪽을 더 편드는 것이 수정자유주의이고, 하층계급 쪽을 더 위하는쪽이 사회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극단형인 공산주의는 자본가나 지주를 아예 없애버리고 만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좌경화인가? 개인주의자로서 보면 수정자유주의도 좌경화 되었다고 본다. 국가의 개입을 끌어들이는 것은 모두 좌경화이다.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에 맡기라고 외친다. 의료보험이 왜 필요하며, 주택정책이 무슨 소용이냐, 모든 일을 자유로운 시장기능에 맡겨두면 수요와 공급의 균형원칙에 따라 자율적인 질서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개인주의자들은 중앙집권제를 싫어하고 누진세제를 반대하고 노동조합을 기피한다.
그러나 수정자유주의자는 사회보험제의 도입을 찬성한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벌써 사회주의적 정책이 들어온다.
우리 나라에도 의외로 그런 정책이 많이 집행되고 있음을 본다. 우선 토지정책이 그렇다. 그린벨트가 있고 기준지가제가 있고 토지매매허가제가 있고 토지수용령이 있다. 개인주의자로 보면 이것은 좌경화 정책이다.
교육정책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 국민학교서부터 중·고등학교가 모두 교육구역제로 평준화정책을 하고 있다. 과외를 못하게 하고 사립학교를 규제하고있고 수업료를 통제하고있다.
정부에 의해 사회정화운동이 추진되고 있는데 사회정화정책의 대부분이 사회주의적인 것이다. 가정의례준칙의 강행이 그렇고, 호화생활규제 유흥업소단속 퇴폐행위규제 기타 질서확립운동이 모두 강력한 국가규제를 받고있다.
또 우리나라에선 공기업의 비중이 높다. 전력 철도 통신 전매사업 등은 국유 아니면 공유이고 은행 방송 관광 기타 주요산업들이 공공적 관리를 받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정책구호로서 복지사회건설을 내걸고 있다. 산재보험 의료보험이 확립되었고 국민연금제도도 곧 실시된다고 한다. 공적부조체계도 확대되어 가고있고 이른바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 이것은 모두가 사회주의적 발상인 것이고 좌경화정책이다.
아마도 고집스러운 자유주의자가 보기엔 우리나라가 수정자유주의라기보다는 사회민주주의쪽에 가깝다고 우길는지도 모른다. 국민의식을 질문조사해 보면 상당수가 강력한 토지정책을 찬성하고있고 누진세제를 바라고 있고 교육평준화를 찬성하고 있고 사회정화운동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주요산업의 국영 내지 공영에 반대하지 않고 있고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바라고 있다. 그것도 상층보다는 하층이 더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반공의식이 아주 강하다.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바라고는 있으나 극단적인 형식적 평등은 좋아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가 싫어하는 것은 우파보다는 중도파이다. 중도파는 공산주의세력을 침식하고 혁명의욕을 약화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를 회색분자니, 기회주의니 하여 매도한다. 그러니 중도파는 용공분자가 될 수 없다.
자유진영 국가에서는 개인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까지 정치세력으로서 용인되고 있다.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좌경화라면 그것은 체제동조적인 것이지 체제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나라도 이제는 좌경화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지났다고 본다. 개인적 자유의 폭을 신장시키면 좌경화 세력이 줄어들 것이고 공권력의 행사가 불가피해지면 좌경화 정책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을 국민들이 더 바라느냐는 생활의 조건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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