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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구성원 이해관계 다르면 소통만으로 갈등 해결 어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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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22면

영국의 왕정체제를 벌집으로 묘사한 가브리엘 트레기어의 1837년 그림.

동물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특히 개·철새·벌레(곤충) 등의 표현은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단어이다. 그런 동물에 부정적인 대상을 비유하는 이유는 동물 행태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동물의 사회적 행동은 20세기 들어와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34년 전인, 1982년 6월 12일 사망한 카를 리터 폰 프리슈의 꿀벌 연구는 인간만이 의사소통 능력을 갖는다는 인식의 근간을 흔들었다. 프리슈와 그의 후학들은 이른바 ‘8자 춤’이 꿀벌들의 의사소통이라는 점을 1944년에 밝힌 것이다. 사실 의사소통뿐 아니라 도구의 사용도 인간만의 행동이 아님은 이미 밝혀져 있다.


먹이원을 발견한 꿀벌은 벌통으로 돌아가서 두 원, 즉 8자를 그리는 모양으로 춤을 춘다. 두 원의 가운데를 지나는 방향과 길이로 동료들에게 먹이원의 위치를 알려준다. 벌통의 수직 방향을 태양 방향이라고 전제한 채 엉덩이 춤을 추는 방향에 먹이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수직에서 오른쪽으로 30°기울어진 방향으로 날개와 엉덩이를 흔들고 나아가면, 태양을 기준으로 오른쪽 30°의 각도(1시 방향)에 먹이원이 있다는 의미이다. 또 엉덩이 춤의 동선이나 시간이 길면 길수록 먹이원이 멀리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1㎝ 또는 0.75초의 엉덩이 춤 동작은 약 1㎞ 떨어진 곳에 먹이가 있다는 뜻이다.

벌통으로 돌아온 꿀벌은 수직(태양) 기준으로 지그재그로 추는 엉덩이 춤 방향에 먹이원이 있음을 동료에게 알린다. 8자의 동선 가운데 0.75초 동안 엉덩이 춤을 추면 먹이원이 약 1㎞ 떨어져있다는 뜻이다.

 꿀벌의 의사소통 능력 파헤처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프리슈의 꿀벌 연구는 많은 후속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꿀벌은 먹이가 벌집에 가까이 있을 때 낫형의 춤을, 더 가까이 있을 때에는 원형의 춤을 추는데, 그런 춤 유형의 전이는 단 하나의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또 벌통의 온도에 따라 그 곳에서 자란 꿀벌의 8자 춤 빈도도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차가운 벌통에서 자란 꿀벌 집단은 학습의 빈도가 낮고 이에 따라 먹이 위치가 잘 전달되지 않아 먹이가 더 적게 공급되며 따라서 그 벌통 온도가 높게 유지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최근에는 꿀벌의 먹이활동 의사소통에서 후각이 8자 춤보다 더 중요하다는 연구가 제시되기도 했다.

동물을 연구하는 아리스토텔레스(1791년 경, 작가 미상). 동물 사회성에 대한 관심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엄격한 관찰과 분석은 현대에 와서야 이뤄졌다.

꿀벌이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무리 짓기는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혼자보다 뭉치는 게 생존에 더 낫다는 게 여러 동물들의 행태에서 나타난다. 희생양, 역사적으론 희생염소(scapegoat)가 고대 의식 후 혼자 황야에 버려졌을 때 생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희생’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아프리카 초원의 초식동물 대부분은 무리를 짓고 살아간다. 큰 무리를 구성하고 있으면 포식자가 주눅들 수 있고 또 공격받을 개체가 많아 생존 가능성이 크다. 포식자도 마찬가지이다. 혼자서는 사냥이 어려워 집단생활을 하게 됐다. 숫사자가 1대1로 싸워 이기지 못하는 동물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는 무리 생활 때문에 백수의 왕으로 불린다.


 정보 공개·공유돼야 집단지능 발현개체 차원에서 관찰되지 못하는 능력이 집단 차원에서 관찰되면 이는 ‘떼 지능’ 또는 ‘집단지능’으로 부른다. 누구나 읽거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위키피디아 등 인터넷 상의 여러 사이트는 집단지능의 예다. 더 나아가 집단이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하는 것은 ‘초유기체’로 불리기도 한다.


꿀벌과 같은 무리에게서 집단지능이 발현되려면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꿀벌 사회의 의사소통은 본대로 보고하는 방식이다. 8자 춤은 바깥세상을 다녀온 정찰 벌이 동료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만일 자신이 본 대로 공개적으로 보고하지 않고 대신에 다른 정찰 벌의 입장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아예 공개적인 보고를 하지 않다가는 집단을 잘못된 장소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는 컴퓨터시뮬레이션 연구도 있다. 집단 내 의사소통에서 정보의 독립·공개·공유가 중요한 이유이다.


꿀벌 사회에서는 여러 개체가 각각 전달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고 지도적 개체의 명령하달식 메시지는 별로 없다. 여왕벌이 던지는 메시지는 선(腺) 분비물을 통해 건재를 알려 새로운 여왕을 키우지 않도록 하는 정도뿐이다.


의사소통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각이 서로 통함을 의미한다. 꿀벌 집단이 분봉(分蜂)할 때 새로운 정착지의 결정은 한 곳으로만 정해야 하는 승자독식의 의사결정이다. 이사할 장소에 관한 여러 정찰 벌의 다양한 정보를 접한 후 꿀벌 집단은 다수결 방식으로 한 장소를 선택한다. 처음에는 다양한 장소가 제기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장소로 합의되는 방식이다.


꿀벌의 8자 춤은 꽃밭이나 새로운 보금자리의 질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진다. 좋은 곳을 정찰한 꿀벌의 8자 춤은 오래 여러 바퀴를 도는 반면, 좋지 않은 곳을 다녀온 정찰 벌의 8자 춤 횟수와 시간은 적고 짧다. 이들의 춤을 본 다른 꿀벌은 추가로 해당 지역을 정찰한 후 8자 춤을 춘다. 중립적인 개체들이 특정 정찰 벌의 8자 춤을 따라 추면서 합의는 무르익는다. 초기 정찰 벌의 8자 춤 빈도는 갈수록 현격히 줄어든다. 집단의 결정으로 선택된 좋은 대안의 최초 정찰 벌조차 지속적으로 8자 춤을 추는 경우는 없다. 최초 주창자보다 동료의 지지 행동에 의해 집단 전체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승자이든 패자이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합의가 가능한 것이다.


하늘에서 떼로 나는 새 그리고 바다 속에서 떼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관찰하면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감탄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하나의 방향으로 간다는 해석이 한 때 지배적이었다.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이 뇌에 분비되면서 메뚜기가 집단성을 띤다는 연구도 있다. 로마 하늘을 나는 찌르레기 무리를 고성능 카메라로 관찰한 결과, 실제로는 바로 옆 동료의 이동 방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센 반대 방향의 움직임을 만나면 방향을 바꾸는 방식이다.


이는 대체로 다수결 방식으로 부를 수 있다. 붉은 사슴 집단은 60% 정도의 개체가 일어서면 이동을 시작하고, 고릴라 집단은 60% 정도의 개체가 소리치면 이동하기 시작한다고 관찰된 바 있다. 아프리카 물소 무리 또한 다수가 쳐다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톤키안마카크 원숭이 무리는 다수가 줄 선 쪽으로 함께 이동한다고 관찰되었다.


 집단의 목표 다를땐 ‘분리’가 최선일 수도집단지능이 늘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공지능이든 집단지능이든 어떻게 알고리즘을 짜느냐에 따라 그 성능이 달라진다. 바둑 게임에서 프로기사에게 이기는 인공지능도 있고 이기지 못한 인공지능도 있다. 잘못된 집단지능은 종종 참변의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해변에서 떼로 죽은 동물 무리가 그런 예이다. 집단을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때 알려진 나그네쥐의 떼죽음도 오늘날에는 선도자의 잘못된 인도의 결과로 밝혀져 있다. 심지어 메뚜기는 너무 많아지면 동족을 먹어 치운다.


집단 선택의 결과가 효과적이지 못함은 공공선택론 등 여러 학문분야에서 밝혀진 바 있다. 197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는 여러 개인으로 구성된 집단이 파레토 최적 등의 효율적 결과를 얻으려면 집단의 결정과 동일한 선호를 가진 특정인이 존재해야 함을 증명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집단의 문화와 행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독일 나치와 중국 문화대혁명 모두 부정적 집단행동의 예이다.


합의는 생각이 다를 때보다 같을 때 더 쉬움은 당연하다. 분봉할 때 좋은 장소로 이사하는 것에 모든 꿀벌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에서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해결책이다.


만일 집단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면 의사소통만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거짓과 배신의 행동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다. 제비의 경고음을 관찰한 한 연구에 따르면, 제비 수컷은 자신의 짝이 혼외정사를 할 때 포식자가 출현했다는 경고음을 내어 다른 수컷이 도망가게 만들었다. 따라서 경고음은 짝짓기 시기에 많았던 반면에 포란 시기에는 적었다. 둥지 짓는 시기의 경고음은 포란 시기보다 많았지만 짝짓기 시기보다는 훨씬 적었다. 거짓 경고음이 빈발하면 경고음에 대한 동물들의 반응도, 즉 신뢰성이 떨어짐은 여러 관찰 연구에서 밝혀졌다. 거짓과 불신의 행위 또한 이기심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결과이다.


꿀벌 사회의 이해관계와 달리, 인간 사회의 이해관계는 구성원끼리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집단 내 다른 구성원과 대립된 이해관계를 가진 자도 있고, 우두머리를 교체하려는 욕심을 지닌 자도 있으며, 집단적 불행 속에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 의사소통이 문제라고 지적된 사안 가운데 일부는 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확고한 서로 다른 목표를 갖고 있을 때에는 의사소통이 실현되기 어렵고 만일 실현되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하다. 그런 경우에는 집단의 분리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무리를 이루면 훨씬 강한 영향력을 갖는다. 집단이 효율적으로 존속하려면 집단 내 의사소통 또한 활성화되어야 한다. 조직 구성원의 목표가 동일할 때에는 자신이 아는 대로 다른 구성원에게 알리고 지도자를 포함한 모두가 다른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한다면 합의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때에는 무리를 짓지 않는 것 또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기존의 집단에서 이탈하면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다만 기존 집단에서 벗어나 새롭게 얻을 기대이득이 크다면 기존 집단에 연연치 않고 새로운 집단을 구성할 뿐이다. 주지가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할지 아니면 주지를 내쫓아야 할지는 갈등을 겪는 모든 국가·사회·집단의 고민이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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