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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게이머도 자부심 느끼는 판타지로…'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 던컨 존스 감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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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컨 존스(45) 감독에게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6월 9일 개봉) 연출은 엄청난 부담감과의 싸움이었다. 1억 명에 달하는 원작 게임 팬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했고, 이 프로젝트를 맡았다 하차한 샘 레이미 감독의 그늘에서도 벗어나야 했다. ‘더 문’(2009)과 ‘소스 코드’(2011) 등 전작이 호평받긴 했지만, 제작비 1억6000만 달러를 들여 최첨단 VFX(Visual FX·시각 특수 효과) 기술을 쏟아붓는 대작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던 올해 초, 아버지(영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를 잃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다행히 존스 감독은 이 모든 부담을 딛고 각본부터 연출까지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고수한 끝에, 올여름 시즌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로 꼽히는 영화를 완성해 냈다.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11일 미국 LA 인근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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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 스틸컷]

원작 게임의 엄청난 인기와 영화의 예산 규모 등 여러 면에서 큰 도전이다.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연출을 맡은 이유는.
“그간 SF영화는 다채로운 하위 장르를 형성해 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스탠리 큐브릭 감독) ‘블레이드 러너’(1982, 리들리 스콧 감독) ‘에이 아이’(200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만 봐도 SF 장르 안에서 다양성이 확실히 보인다. 반면 판타지영화는 장르 내 다양성이 훨씬 부족했다.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2001~2003)를 통해 정점을 찍긴 했지만, 그 스펙트럼은 SF 장르에 비해 훨씬 좁았다. 완성도 면에선 ‘반지의 제왕’ 시리즈 수준에 도달하되, 판타지 장르에 새로운 느낌을 더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원작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Blizzard) 측도 연출가 선정에 꽤 까다로웠을 것 같다. 그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분명 블리자드도 나름의 기준이 있었을 거다.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는 차치하고 ‘워크래프트’만으로 20여 년의 역사를 이루지 않았나. 게다가 블리자드는 이 영화를 만들고자 무려 10여 년 동안 노력해 왔다. 내가 합류하기 전에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했지만, 레이미 감독과 블리자드의 의견 차로 제작이 전면 중단되는 아픔도 있었다. 처음 블리자드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내 아이디어를 전달했다. 그때 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원작 게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데다, 내 생각이 블리자드가 원하는 영화의 방향과 같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면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것들을 뛰어넘는 과정이었다. ‘더 문’은 대본 작업부터 최종 마무리까지 1년 정도 걸렸지만, 이 영화에는 3년 반을 쏟아부었다. 마치 마라톤 같은 작업이었다. 의상부터 세트 디자인과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인력이 모인 만큼 모든 걸 최고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모두가 훌륭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내게 힘을 보태 줬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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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 스틸컷]

장대한 서사가 있는 게임인 만큼 스토리와 캐릭터 작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번 영화는 게임의 서사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이야기를 가져갔다. 즉 인간과 오크가 처음으로 만나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다. 캐릭터는 대부분 게임에서 그대로 가져왔지만, 한층 더 세밀하고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나와 배우들 모두 노력했다. 캐릭터 사이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를 위해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받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그들의 가족 관계를 그리는 데도 공을 들였다. 오크인 듀로탄(토비 케벨)이 아내와 자식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인간과 오크 종족을 선과 악 이분법의 구도로 나누지 않았다는 점이 굉장히 새롭다.
“비록 큰 도전이더라도 새롭게 접근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특히 판타지 장르에선 흔치 않은 접근이다. 구조적으로 양쪽을 오가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도전을 즐기는 편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경우 영화와 원작 소설 모두 걸작이지만 인간이나 잘생긴 캐릭터는 ‘선’, 그렇지 않은 캐릭터는 ‘악’으로 양분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이런 구도가 조금 구태의연하게 느껴지지 않나. 인간과 오크 양편 모두에 나름의 영웅을 만들려 했고, 그 어떤 사건의 진행도 각 종족의 입장에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워크래프트’의 세계를 처음 접할 일반 관객의 마음도 사로잡아야 하고, 원작 게임을 사랑해 온 게이머들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했을 텐데.

“나는 픽사(Pixar)의 팬이다. 픽사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어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완전히 상반된 관객층에게 각기 다른 수준으로 작용하는 힘이 있다. 우리 영화도 그걸 노렸다. 한편으로는 게이머가 편안하고 반갑게 느끼도록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만한 판타지영화를 만들려 했다. 가장 이상적인 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보며 소통하는 것이다. 게이머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이게 바로 내가 밤을 새며 ‘워크래프트’를 하는 이유’라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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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크래프트:전쟁의 서막` 스틸컷]

아직 이르긴 하지만 속편 계획도 궁금하다.
“일단 내게 10억 달러를 주면 만들어 보겠다(웃음).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만들면서 속편 생각을 안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크리스 맷젠(블리자드 개발 선임 부사장 겸 ‘워크래프트’ 시리즈 스토리 저자)과 ‘이 작품을 3부작으로 만든다면 어떤 식으로 전개해야 할까’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 오크 종족은 삶의 터전을 잃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1편에선 이 여정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3부작이 끝날 무렵엔 이에 대한 결론을 보여 주고 싶다.”


게임 ‘워크래프트’는…
영화의 원작은 전 세계 1억 명의 유저를 거느린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다.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1994년 처음 ‘워크래프트’의 세계를 창조해 낸 이래, 20여 년 동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다섯 개의 핵심 게임을 내놓으며 지속적으로 그 세계관을 확장해 게이머들을 매혹시켜 왔다. 그중 이번에 영화로 각색된 이야기는 게임의 출발 지점인 1994년 출시작 ‘워크래프트:오크 & 휴먼스’. 포털을 통해 아제로스로 침입하려는 오크와 인간의 충돌을 통해, ‘워크래프트’ 세계를 이루는 두 축인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탄생 배경을 조명했다.

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lee.rache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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