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요타발 재택근무가 저출산에 던지는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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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직장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 정해진 근무시간의 틀에 갇혀 직장인·주부·엄마·며느리의 역할에 충실하기가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 기피와 만혼이 심화되고,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는 경력단절 여성이 급증한다. 정부는 경력단절 여성이 205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본다. 여성들의 고충은 곧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가 2001년부터 15년째 초저출산(출산율 1.3명 이하)의 늪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전 직원 35% 재택근무’ 실험은 파격을 넘어 혁명에 가깝다. 오는 8월부터 본사 전체 직원 7만5000명 중 2만5000명을 집에서 근무시키겠다는 것이다. 생산직을 제외한 입사 5년 차 이상의 인사·경리·영업직과 연구개발(R&D) 기술직이 대상이다. 재택근무 직원은 일주일에 두 시간만 회사에 나오면 된다고 한다. 과연 회사가 굴러갈지 의문이 들 정도인데 도요타는 정보 유출 등에 대한 세부 대책을 세우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도요타의 파격적 실험엔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유능한 인재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일 잘하는 여성은 물론 애 키우는 남성 ‘이쿠멘(イクメン)’ 지원도 늘려 가정 문제로 인한 인재 유출을 막고, ‘인구 1억 명 유지’에 팔을 걷어붙인 아베 신조 총리의 외침에도 화답하려는 속내로도 볼 수 있다. 미쓰이물산과 리코 등 유수 기업들도 비슷한 연유로 재택근무를 확대한다고 한다.

이런 일본 기업의 움직임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선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인 출산율(1.24명)을 2020년까지 1.5명으로 높이려면 일·가정 양립을 위한 혁신적 방안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유연근무제를 획기적으로 보완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민간기업들도 도요타의 실험을 주시하며, 고착화된 근무형태를 바꾸려는 발상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어제 정부가 양성평등위원회에서 내놓은 ‘워킹맘·워킹대디 고충상담 확대’ 같은 파편적 방안으론 일·가정 양립이 결코 실현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