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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사진인가] 上. 수직 상승하는 사진 '몸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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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이후 현대사진 장르의 급부상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뉴욕.파리의 메이저급 갤러리의 절반 이상이 사진작품으로 메워지고 있다. 미술품 견본 시장의 변화도 그렇다.

그중 영향력있는 바젤을 비롯해 마이애미.쾰른.시카고 아트페어 등에서도 전통적인 회화 장르나 조각 등을 제치고 사진 작품의 숫자가 눈에 띄게 증가한 지는 벌써 10년 가깝다.

거래량에서도 다른 장르를 앞지르면서 명실상부하게 '현대미술의 꽃'으로 등장했다. 그걸 증명하는 게 '몸값'이다. 과장없이'억'소리가 난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독일의 젊은 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작품은 2001년 뉴욕현대 미술관 개인전 이후 미화 60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게 보통이다. 7~8년 전만 해도 같은 작품이 2만~3만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폭등세다.

구르스키뿐 아니다. 거장 반열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현재 서울의 대림미술관에서 애호가들과 만나고 있는 그의 작품 판매량은 회화 장르에 못지않다.

최근 영국 BBC는 저널 '아트 리뷰'를 인용하면서 지난 30년간 미술작품 매출액 랭킹에서 리히터가 2위라고 발표했다. 총매출액은 약 1천6백12억원. 1위인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제스퍼 존스가 1천8백50억원이니 간발의 차이다.

스타급들도 비슷한 예우를 받는다. 토머스 스트루스는 물론이고, 펠릭스곤잘레스 토레스, 앨릭스 카츠 등의 작품도 미술시장에서 억대인 50만~70만 달러선에서 거래된다.

따라서 사진 장르가 뜬 것은 징후 정도로 볼 게 아니라 '스타작가-시장형성-컬렉터'3박자를 갖춘 대세다. 또 장르 사이의 바통체인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 미술시장의 지표란 이런 대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 1~2년 새 국내의 사진 바람 역시 외국의 영향 때문이다. 아직은 모색단계라지만, 올 여름 화단은 사진 초강세가 특징이다.

리히터전(31일까지 통의동 대림미술관) 외에 매머드급 전시인 제3회 사진영상 페스티벌(8월 24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공공정보전(8월 12일 논현동 박영덕화랑), NOTHING HAPPENED THERE전(7월 31일까지 창천동 쌈지스페이스 1층 이벤트클럽) 등은 요즘 화랑가의 최대 볼거리다. 그렇다면 사진을 띄우는 '부력'은 무엇일까?

"사진의 급부상은 현실성과 일상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설명된다. 즉 예술이란 게 현실과 동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 삶과 일상성이야말로 예술의 뿌리라는 포스트모던한 인식을 깔고 있다. 즉 삶을 닮은 예술(life-like arts)의 시대가 됐다. 일상을 투영하는 사진이라는 매체는 우리 시대가 호출해낸 것이다." 사진평론가 진동선씨는 사진이야말로 현대사회 최적의 장르라고 설명한다.

도회지 거주 공간이란 환경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 현대식 인테리어, 못질이 어려운 시멘트 벽체구조 등은 '매끈한 사진'과 궁합이 썩 좋다. 이통에 컬렉터의 취향도 변했다.

오일을 이겨 바른 회화는 이제 칙칙하고 텁텁하다. 기존의 회화가 느끼하다면, '쿨한 매체'로 사람들 품을 파고든 게 바로 사진이다. 여기에 가격도 좋다. 보통 6~12점씩 에디션(물론 판화.조각처럼 모두 오리지널이다)이 있게 마련인 사진은 회화 장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사진의 수직상승을 문명사적 현상으로 풀기도 한다. 요즘 같은 다매체 시대, 대량복제 시대에 사진은 몸 바꾸기에 썩 용이하다. 요즘 테크놀로지 시대에 사진은 친근한 매체로 성큼 다가선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사진은 '왠지 거부감이 드는' 거룩한 회화.조각,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현학적인 설치미술과는 다르다. 즉각적이고 보다 감각적인 장르인 사진이 뜬 것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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