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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불안에 중독된 당신, 하루 10분이라도 ‘마인드 바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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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슬럼프가 고민인 40대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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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주째 야근해도 업무 진행률 0%인데)

40대 초반 직장 남성입니다. 해마다 두세 번씩 슬럼프가 찾아와 애를 먹고 있습니다. 벌써 2주째 야근하며 일을 붙잡고 있는데 업무 진행률은 0%입니다. 기한은 다가오는데 좋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 그냥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매번 위기를 맞이할 때마 이런저런 방법으로 돌파했는데 이번에는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 불안합니다. 계속 반복되는 슬럼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요.

A.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지 마세요)

2주 연속 야근을 하고 계시다니 성실하고 열정적인 분이라 느껴집니다. 자신을 밀어붙여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을 때의 성취감을 이미 경험했고 그런 쾌감을 즐기시는 분이란 느낌도 듭니다. 이런 캐릭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멋진 주인공이 될 때가 많습니다. 자기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그래서 위기를 극복하고 성취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죠.

야근 안 하면 일 못하는 불안 중독

그런데 실제 생활에선 이렇게 밀어붙이는 형태로만 일하게 되면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기 쉽고 일의 효율도 떨어지게 됩니다. 심리적으로는 불안 중독 현상도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성취를 이루었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자동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2주간 야근을 하며 시간에 쫓겨 업무를 수행할 때 뇌는 전투 상황입니다. 전투를 할 때 주로 쓰는 감정 신호가 불안입니다. 불안은 생존 행동을 일으키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을 높여 전투적으로 나를 밀어붙인 상황에서 성취를 이루게 되면 불안을 느껴야만 성취가 이루는 것으로 내 뇌가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무를 할 때 불안하지 않으면 불안하게 됩니다. 불안하지 않으면 일을 잘 마치지 못한 것 같은 불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불안이 불안을 만드는 꼴이 됩니다.

때론 불안 주도형 공격적 업무 스타일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위기를 돌파할 때 유용합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이런 스타일로 업무를 하다 보면 과불안 상태가 되어 전반적인 뇌의 기능이 떨어져 버립니다. 스마트폰이 방전되듯 뇌의 에너지가 떨어지는 소진 증후군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너무 지쳤을 땐 분노 조절도 안 돼

마음의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를 소진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소진증후군이 찾아오면 세 가지 문제가 뚜렷하게 찾아옵니다. 먼저 의욕이 떨어집니다. 일이 부담스럽고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의지를 동원해서 애써봐도 동기 부여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억지로 자기를 움직여 일해도 성취감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노력해서 무언가 목표를 달성해도 만족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공감 능력이 현저히 결여됩니다. 공감은 남을 위로하는 능력이면서 내가 남에게 위로받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쳤을 때 상대방에게 따뜻한 감성 에너지를 받아 충전을 해야 하는데 주는 것은 고사하고 받는 것도 잘 안 되는 마음 상태입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 소통도 거칠어지게 됩니다. 공감은 남의 고통이 내 고통처럼 느껴지는 것인데 저 사람의 고통이 잘 느껴지지 않으니 평소 친절했던 사람조차 순간 거친 말이 튀어 나갈 수 있습니다. 심하면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마저 할 수 있습니다.

소진증후군의 솔루션으로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disconnect to connect train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친 뇌를 충전케 하는, 마음에 자유를 주는 마인드 바캉스 훈련인 셈인데요. 바캉스의 어원을 보면 ‘자유를 찾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자유를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면 detachment, 즉 ‘거리를 둠’입니다. 맹렬히 작동하던 전투 시스템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한 발짝 치열한 삶에서 거리를 두고 떨어져, 뇌를 이완시키고 충전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뇌는 밀려오는 외부 정보와 전투를 벌이는 뇌의 스트레스 시스템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스트레스 시스템만 계속 작동되면 충전 없이 뇌의 에너지만 소진돼 버리고 결국 소진증후군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루에 10분이라도 외부 정보와의 연결을 끊는 단절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외부 정보와의 전투를 잠시 내려놓을 때 내면의 충전 시스템에 스위치가 켜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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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충전 시스템의 스위치 켜는 법

일상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단절 훈련 방법을 소개해 드립니다.

1 세 번 깊게 호흡하며 그 호흡의 흐름을 느끼기: 출근해서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회의 시작 전에, 또는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호흡의 흐름과 마음을 느껴봅니다.

2 조용한 곳에서 밥 음미하며 먹기: 음식의 색깔, 향, 그리고 밥알의 움직임을 느끼며 먹는 천천히 먹기(slow eating)도 내부 세계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심리적 허기로 인한 과도한 칼로리 섭취를 막아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됩니다.

3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 여유롭게 몸의 움직임을 느끼면 뇌의 긴장감이 이완되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깁니다.

4 일주일에 한 번 벗과 힐링 수다하기: 지치고 불안한 마음은 내 마음의 바랄 볼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친한 벗과의 공감 소통은 내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해 줍니다.

5 슬픈 영화나 슬픈 미술 작품 감상하기: 때론 슬프고 우울한 마음 그대로 지켜봐 줄 때 역설적인 충전이 일어납니다.

6 일주일에 3편의 시 읽기: 사람의 마음은 논리보다 은유에 움직입니다. 은유에 친숙해지는 것은 내 마음을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7 스마트폰 집에 두고 당일치기 기차 여행하기: 피곤할 때 긴 여행보다 짧은 여행이 내 마음에 에너지를 보충해 줍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연습을 하다 보면 내 뇌가 만들어 내는 생각과 감정이 하얀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유를 찾는다는 어원을 가진 바캉스, 심리학적 자유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여유에서 찾아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유가 창조적 마인드를 갖게 하고 공감 소통 능력도 증가시켜 사회적 성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슬럼프에 빠졌다면 잠시 내 마음의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쉬어 가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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