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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사드 얘기만 나오면…앞서가는 미국, 수습하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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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관련한 한·미 정부의 진실게임이 또 재개됐다. 게임의 양상은 늘 그랬듯이 미국 측이 내지르고 한국 측이 부인하며 수습하는 모양새다.

카터 “샹그릴라 회의서 다룰 수도”
국방부 “양국 논의 계획 없다” 진화
오전 6시에 기자들에게 문자 보내
일본 방송 “사드 내년 대구 배치”

제15차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취재차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던 3일 오전 6시2분(현지시간).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국방부의 입장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국방부는 종종 문자메시지나 e메일로 입장을 밝혀왔다. 이례적인 건 시간이었다. 국방부가 그만큼 다급했다는 의미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사드와 관련해 한 발언을 국방부가 전면 부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말은 이렇다. 카터 장관은 2일(현지시간) 싱가포르로 향하는 자신의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러곤 사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사드는 한·미 동맹이 결정할 것이고 논의가 지금 진행 중인데 (4일 열리는)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한국 국방장관을 만나 사드 배치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과 만나 논의할 수 있다고까지 한 만큼 카터 장관의 발언이 실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카터 장관을 수행한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곧(soon)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놀란 건 사드라는 민감한 이슈에 맞닥뜨린 한국 국방부였다. 하루 종일 진화에 나섰다. 국방부는 “아직 발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협의가 진행된 게 아니다. 샹그릴라 대화에서 한·미 국방장관 간 사드를 논의할 계획도 없다”고 부인했다.

한 장관까지 직접 나섰다. 한 장관은 3일 싱가포르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한·미 공동실무단이 마련한 건의안을 양국 정부가 승인하는 절차를 거쳐서 이뤄지게 되며, 현재 공동실무단이 신중하게 협의를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과정과 절차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이 똑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사드 문제는 이번 회담의 의제가 아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카터 장관의 사드 발언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펜타곤의 ‘발언’→한국 국방부의 ‘부인’으로 수습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늘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숨바꼭질을 지켜보는 마음은 개운치 않다.

사드 논란의 시작은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본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했다”는 발언이었다. 이후 정부는 속 시원한 답변보다는 미국과 사드 배치를 논의하고 있다는 걸 숨기기에 급급했다. 지난해 2월 “지속적인 협의를 하고 있다”(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 “비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다”(제프 폴 국방부 공보담당관) 등의 발언이 나오자 청와대까지 나서서 ‘3NO’(미국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태도는 지난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로켓) 발사 이후 급변했다. 사드 배치 논의를 공식화한 것이다. 3월 4일 실무협의회 구성과 운영을 위한 약정(TOR)을 체결하고 배치 장소와 운용 방법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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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그린 “한·중 관계 강화와 한·미 우호는 병행 가능”



한국 정부 내에서조차 사드 논의가 마무리 단계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중국을 의식해야 하다 보니 사드 얘기만 나오면 국방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이해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미 간에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늘 끌려다니고 남이 한 말을 주워 담기만 하는 군과 국방부를 보는 국민은 불안하다.

한편 일본 민영방송 TBS 계열의 JNN은 3일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한·미가 이르면 내년에 사드를 대구에 배치하기로 합의했으며 120명 규모의 주한미군 레이더 부대가 운용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JNN은 “한국은 수도권 배치를 요구했지만 미 측이 군사거점인 부산 방어를 포함해 보다 전략적인 운용을 위해 대구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부지 선정과 관련해선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해명했다.

싱가포르=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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